
#. 서울 서대문구의 한 좁은 골목길을 불법 주차 차량이 막아서고 있다. 사이렌을 울리며 진입하던 소방차는 통행을 위한 최소 폭인 2.5m조차 확보되지 않아 현장으로 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방차는 운전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주저 없이 승용차를 뒤에서 차체로 밀어붙이며 약 10m가량을 강제로 밀어냈다. 굉음과 함께 승용차 뒤범퍼는 찌그러지고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소방차는 전진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4일 오후 서대문구 홍제동 '소방영웅길' 일대에서 '긴급출동 방해 차량 강제처분' 공개 훈련을 진행했다. 폐차를 앞둔 실제 차량과 50여 명의 대원이 투입된 이번 훈련은 주택가 이면도로에 세워둔 차량이 '골든타임' 확보를 막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소방당국은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5가지 구체적 상황을 설정해 집행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앞서 보여준 출동로 확보를 위한 '강제 밀기'에 이어서 소화전 앞 차량의 '창문 파괴 후 호스 관통' 훈련도 진행됐다.
해당 상황은 소화전을 막고 주차된 흰색 차량 때문에 용수 확보가 어려운 것을 가정했다. 실제로 소화전 등 소방시설 주변 5m 이내는 주차 금지 구역이다. 이에 소방대원은 지체없이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깨부수고 공간을 확보한 뒤 소방호스를 차량 창문으로 관통시켜 소방차와 연결했다. 현장 관계자는 "소방호스를 우회할 경우 수압이 낮아져 화재 진압을 위한 용수 확보가 힘들다"며 강제처분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 밖에 좁은 주택가 골목 입구를 막은 불법 주차 차량에 대한 '강제 진입' 훈련도 진행했다. 소방차는 차량 범퍼를 부수고 진입 공간을 확보해 골목을 돌파한 뒤, 신속하게 수관을 연장해 화재를 진압했다.
이렇듯 소방 현장 출동 때문에 불가피하게 파손된 차량은 별도의 손실보상이 진행된다. 이날 훈련에서도 차주가 차량 파손에 거칠게 이의를 제기하며 보상을 요구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때 나선 것은 현장 출동 대원이 아닌 전담 부서인 '119사법경찰팀'이었다. 이들은 차주에게 합법적인 강제처분에 따른 손실보상 가능 범위를 안내하며 민원을 전담 처리했다.

한편 이번 훈련이 진행된 홍제동 일대는 25년 전인 2001년 3월 발생한 홍제동 화제 사고 당시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지연되면서 6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다. 강제처분 훈련을 이곳에서 시행한 것은 서울소방재난본부의 대원 보호와 신속한 출동 의지를 반영한 셈이다.
홍영근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은 이날 훈련 총평을 통해 "당시 좁은 골목길과 주차 차량으로 인해 현장 진입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날의 희생은 지금도 우리에게 무거운 책임으로 남아 있다"며 "소방차 출동로 확보는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의 길'인 만큼, 소방활동에 지장을 줄 때 예외 없는 강제처분이 불가피하다. 현장에서 소신 있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 차원의 보호와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