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태양전지·패션으로 확장

엡손은 26일 가정용 프린터의 핵심 부품으로 알려진 잉크젯 프린트 헤드가 최근 디스플레이·전자·에너지 등 고부가가치 산업 공정으로 활용 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고 밝혔다. 종이에 잉크를 인쇄하던 기술이 정밀 분사 기반의 산업 공정 기술로 진화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엡손 프린터는 가정용 복합기부터 사무실 레이저 프린터, 소호(SOHO) 사업장용 포토 프린터까지 다양한 인쇄 환경에서 출력 품질과 신뢰성을 쌓아왔다. 그 중심에는 잉크를 미세하게 분사해 결과물을 구현하는 ‘잉크젯 프린트 헤드’가 있다.
프린터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 잉크젯 헤드가 산업 현장에 적용되면서 역할은 크게 달라졌다. 미세한 소재를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분사하는 기술은 정밀도가 곧 생산성과 직결되는 산업 공정에서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단순 인쇄 부품이 아닌, 산업용 정밀 분사 모듈로 재조명받는 이유다.
잉크젯 프린트 헤드는 수백~수천 개의 초미세 노즐을 통해 액체 방울을 고속으로 정밀 분사하는 장치다. 프린터에서는 잉크를 종이에 뿌리지만, 산업 공정에서는 전도성 잉크, 발광 소재, 태양전지용 소재 등 다양한 기능성 물질을 다룬다.
전도성 잉크를 활용하면 회로 패턴을 직접 인쇄할 수 있고, 발광 소재를 사용하면 디스플레이 패널 제작으로 이어진다. 태양광 전극 형성이나 텍스타일 패턴 공정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핵심은 ‘어떤 소재든 원하는 위치에 얼마나 정확하게 토출할 수 있느냐’다. 이 때문에 잉크젯 헤드의 정밀도와 내구성은 산업 현장의 생산성과 수율을 좌우하는 기술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잉크젯 인쇄 방식은 크게 열로 잉크를 끓여 분사하는 ‘서멀(Thermal)’ 방식과, 전기적 변형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밀어내는 ‘피에조(Piezo)’ 방식으로 나뉜다. 엡손은 후자인 피에조 방식을 고도화한 ‘마이크로피에조(Micro Piezo)’ 기술을 수십 년간 독자 개발해왔다.

열을 사용하지 않는 구조는 산업 현장에서 차별화 요소로 작용한다. 열에 민감한 첨단 소재는 가열 과정에서 성분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엡손의 마이크로피에조 방식은 수성 잉크뿐 아니라 솔벤트·UV 잉크·고극성 강용제 등 다양한 물성의 유체를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다. 적용 가능한 소재의 폭이 넓을수록 산업 활용 범위도 넓어진다.
엡손은 이 기술을 ‘프리시전코어(PrecisionCore)’ 플랫폼으로 발전시켰다. 최소 2피코리터(pl) 수준의 초미세 잉크 방울을 정밀 제어해, 초정밀 박막 형성이 필요한 공정에서도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엡손은 프리시전코어 기반 프린트 헤드를 완제품 프린터뿐 아니라 산업용 장비 제조사에 모듈 형태로 공급하고 있다. 장비 업체는 자사 설비 구조에 맞춰 헤드를 통합할 수 있어 개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S800-S1은 다양한 소재 토출 특성을 시험하는 연구·실험 장비에 주로 쓰이는 모델이다. 소형 라인 헤드 구조로 공간 제약이 큰 설비에도 적용 가능하며, 3D 구조 기판과 근접한 거리에서도 안정적인 인쇄가 가능하다.
D3000-U1R은 고속·고정밀 인쇄가 필요한 양산 현장을 겨냥했다. 최대 63kHz 고속 구동으로 생산성이 중요한 첨단 제조 공정에서 활용도가 높다.
최근 선보인 S3200-S1은 4.73인치 광폭 인쇄와 600dpi 고해상도를 동시에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대면적 공정에서도 균일한 박막 형성이 가능해 적용 산업을 넓혔다는 평가다.
프리시전코어 기술은 디스플레이(OLED·마이크로 LED) 공정에서 발광 소재와 봉지재 도포에 활용되고, 전자부품 분야에서는 전도성 잉크 기반 회로 인쇄로 공정을 단순화한다. 패키징·라벨 분야에서는 가변 정보 인쇄에, 패션·텍스타일 분야에서는 소량 다품종·친환경 공정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활용 사례가 늘고 있다. 엡손은 국내 스타트업 고산테크와 협력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양산화를 추진 중이며, 강용제 기반 소재를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잉크젯 헤드의 소재 대응력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엡손은 과거 발표했던 중장기 전략 'Epson 25 개정판'에 맞춰, 잉크젯 기술을 전자·에너지·바이오 등 정밀 제어가 요구되는 산업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