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조6000억원 피해 전망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제네릭 약가 인하 등의 내용을 담은 약가제도 개편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이 꾸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노동계 등도 합류하며 반발이 거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23일 보건복지부와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20일 열린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약가제도 개편안을 심의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5일 개최되는 건정심 본회의에서도 관련 안은 다뤄지지 않게 됐다.
이번 개편안의 골자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인 제네릭 약가를 40%대까지 인하하는 것이다. 정부는 제약산업 구조를 제네릭 의약품 중심에서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전환하고, R&D에 적극적인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구조를 통해 신약 개발을 유도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선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 인하 시 단순한 매출 감소에 그치지 않고 R&D는 물론 설비투자, 인력 확충 등에도 영향을 끼쳐 제약산업이 붕괴되고 제약 주권이 저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비대위는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에 이르는 산업계 피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으며 혁신형 제약기업이나 R&D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에 우대 가산을 주더라도 약가 인하 충격을 상쇄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달 1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제1차 이사회를 열고 결의문을 통해 “정부가 만일 국산 전문의약품을 건보 재정 절감의 대상으로만 여겨 이대로 대규모 약가 인하를 밀어붙인다면, R&D 투자 위축은 물론 설비 투자 감소, 인력 감축, 공급망 약화 등 산업 전반의 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제약산업의 경우 R&D 재원의 대부분을 기업이 자체 조달하고 있다. 대규모 약가 인하가 단행되면 기업은 꼭 필요한 R&D 대신 생존을 위한 단기 성과 중심의 사업 전략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퇴장방지의약품, 저가 필수의약품의 생산을 포기하게 만들고, 보건안보 기반의 상실을 자초하게 될 것”이리고 경고했다.
이사회는 △약가제도 개편안 건정심 의결·시행 유예 △약가 인하가 초래한 국민건강과 고용 등 영향 평가 실시 △시장연동형 실거래가 시행안 폐기 △중소 제약기업의 사업 구조 고도화 지원책 마련 △약가 정책과 산업 육성을 정례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정부–산업계 간 거버넌스 구축 등을 촉구했다.
제약업계 외에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산하 산별노조인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화학노련) 등도 약가 인하가 제약바이오산업과 노동시장에 미칠 수 있는 심각성에 공감을 표하며 비대위와 함께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건정심 소위에서 약가 제도 개편안을 상정하지 않은 만큼 정부는 업계와 충분한 소통을 거친 뒤 다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정부는 2월 건정심 의결, 7월 시행을 목표로 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건정심 안건에서 약가제도 개편안이 상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산업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려는 조치로 해석한다”면서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