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엇박자… ‘합격=취업‘ 공식 깨졌다 [일할 곳 없는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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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 수 조정에도 채용 줄어
경기둔화에 감사ㆍ자문시장 위축
빅4 채용 3년 새 절반 가까이 줄어
금융권 긴급 수혈도 '임시 방편'

변호사를 제치고 전문직 연봉 1위로 꼽히던 공인회계사 업계에서 ‘합격=취업’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최종 합격자 수는 최근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회계법인 채용과 실무수습 수요가 더 빠르게 위축되면서 수급 엇박자가 심화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단기 흡수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선발·수습·채용 간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공인회계사 최소선발예정인원은 오랜 기간 1100명 수준을 유지하다 감사원 지적 이후 2024년 1250명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미지정 회계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최근에는 매년 50명씩 감축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다.

문제는 선발 규모를 다시 줄이는 국면에서도 현장의 취업난 체감도가 좀처럼 완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기 둔화와 감사·자문 시장 위축, 업무 효율화 확산 등으로 회계법인의 채용 여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격자 수를 조정하더라도 수습과 채용 현장의 흡수력이 동시에 개선되지 않으면 병목은 해소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빅4 회계법인(삼일PwC·삼정KPMG·딜로이트 안진·EY한영)의 채용 축소 흐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빅4의 신규 채용은 600명 안팎으로 전년도 840여 명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2022년 1340명 수준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감소한 규모다. 대형 회계법인이 과거처럼 신입을 대거 흡수하지 못하면서 합격 이후 진로 선택지도 좁아졌다는 분석이다.

인력 수요 변화의 배경으로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확산이 꼽힌다. 반복적인 감사 보조업무와 자료 정리, 기초 검토 등 정형화된 업무를 AI와 자동화 도구가 대체·보완하면서 신입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던 운영 방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수습 병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도 시행됐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대형 회계법인의 동계 감사기간 인턴십 참여분을 실무수습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도입해 일부 합격자의 수습 개시를 지원했다. 다만 계약기간이 3개월 안팎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다시 대기 상태로 돌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과 금융권 역시 단기 흡수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산하 공공기관에 수습 회계사 채용 검토를 요청했고 신한은행도 특별채용을 실시했다. 업계에서는 수습 통로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일시적 분산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은행과 공공기관 채용이 늘더라도 회계법인 실무와의 연계성이 충분하지 않으면 인력 이동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직무 경험과 교육 체계, 이후 경력 경로가 달라질 경우 합격자 입장에서는 ‘임시 선택지’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채용 부진을 넘어 구조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처럼 ‘합격 후 곧바로 빅4 입사’라는 경로가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발 규모와 실제 수습·채용 수요 간 간극이 지속되면 대기 인원과 경력 불확실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가 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와 대형 회계법인이 자리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수험생의 기대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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