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고름 짜야 새살 돋는 코스닥, ‘좀비’와 작별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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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는 ‘성장의 역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코스닥 시장이 태동한 지 수십 년, 상장사 수는 어느덧 1700개를 넘어섰지만, 지수는 오랫동안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몸집은 거대해졌으나 기초체력은 부실해진, 이른바 ‘비만형 시장’의 전형이었다. 자본시장의 최전선에서 목도한 코스닥의 민낯은 들어오는 문은 활짝 열려 있는데 나가는 문은 굳게 닫힌, 정체된 물줄기와 같았다. 나가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의 활력을 갉아먹고, 전체의 밸류에이션을 하락시키는 암세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12일과 19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상장폐지 집중관리단 가동과 부실기업 신속 퇴출 방안은 시장에 가해진 일종의 ‘전기 충격’과 같다. 핵심은 속도와 기준이다. 기존에 최장 1.5년에 달했던 상장 유지 개선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고, 시가총액 요건 일정도 반기 단위로 조기화해 올해 7월 200억원, 내년 1월 300억원으로 강화한다. 여기에 주가가 1000원 미만인 이른바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을 신설한 대목은 그간 ‘버티기’로 연명하던 한계 기업들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대목은 시장의 반응이다. 통상 특정 종목들이 무더기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면 공포 심리가 확산하며 지수가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발표 후 코스닥 지수는 오히려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시장 참여자들이 이번 조치를 ‘손실’이 아닌 ‘정화’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부실한 좀비 기업들이 사라진 자리에 우량한 기업들의 가치가 제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수를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쓰레기를 치워야 방이 넓어 보이듯, 시장의 지방을 걷어내니 숨겨져 있던 근육이 드러난 셈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재 코스닥에서 관리종목 지정 우려가 있는 기업은 약 150여 개에 달한다. 이들은 그간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개선 기간을 연장하며 시장에 잔류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유지가 기득권이 되는 시대를 끝내고, 적격성 없는 기업은 신속히 퇴출해 자금이 선순환되도록 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수치를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코스닥 시장의 체질 자체를 ‘다산다사(多産多死)’의 건강한 생태계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변화는 사모펀드(PEF)와 인수합병(M&A) 시장에도 매서운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과거 부실 상장사를 헐값에 인수해 ‘시간 벌기’식 구조조정으로 상장 프리미엄을 챙기던 낡은 전략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이제는 공격적인 자산 매각이나 가시적인 실적 개선 없이는 상장 폐지의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본의 논리는 더욱 냉혹해질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자본은 도태될 것이다.

결국 기업 가치 증대의 완성은 ‘나가는 문’을 얼마나 투명하고 신속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소액주주의 피해를 우려해 퇴출을 주저하는 온정주의는 오히려 시장 전체를 고사시키는 독이 될 뿐이다. 부실기업에 묶인 자금을 유망한 혁신 기업으로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투자자 보호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다.

증시는 언제나 숫자로 말한다. 실적 없는 비전과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생존은 기만이다. 이번 퇴출 강화 조치는 코스닥이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피할 수 없는 통과 의례다. 고름을 짜내야 새살이 돋는다. 좀비를 솎아내는 고통을 감내한 후에야 비로소 코스닥 1000포인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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