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ㆍ마이크론엔 막대한 수익”
“데이터센터 본격 건설도 전에 급등세”
“칩 이제 AI와 자동차의 ‘새로운 황금’”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 등 기술업계 리더들이 잇따라 전 세계적인 메모리 반도체 부족 현상이 불러올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열풍이 촉발한 메모리 칩 부족 사태가 기업의 이익을 압박하고, 계획에 차질을 초래하며, 노트북·스마트폰·자동차·데이터센터 등 거의 모든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봤다. 더 큰 문제는 이 수급 불균형이 앞으로 더 악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테슬라ㆍ애플 등 수십 개의 주요 기업들은 올 초부터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인 D램 메모리 부족으로 인해 생산에 제약이 생길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팀 쿡 애플 CEO는 최근 이 현상이 아이폰의 마진을 압박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현재의 메모리 칩 병목 현상을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가 자체 메모리 생산 공장을 직접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선언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머스크는 지난달 말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서 “칩 부족 장벽에 부딪히느냐, 아니면 직접 공장을 만드느냐다”라고 말했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3일 ‘AI 서밋’에 참석해 “2028년까지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내다봤다.
램리서치의 팀 아처 CEO는 최근 한국 최대 규모의 반도체 박람회 ‘세미콘 코리아 2026’에서 “우리는 과거 그 어떤 것보다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며 “지금부터 이 시대 말까지 예상되는 칩 수요는 이전의 모든 기록을 압도할 것이며, 다른 모든 수요처를 압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노버의 양위안칭 CEO는 “이 구조적 수급 불균형은 단순한 단기 변동이 아니다”며 “위기가 최소한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메모리칩 공급난의 근본 원인은 AI 데이터센터 구축 열풍에 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 오픈AI 등 기업들은 챗봇과 AI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메모리를 탑재한 엔비디아 AI 가속기를 대량 구매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메모리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AI 분야로 쏠리면서,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ㆍ마이크론 같은 업체의 일반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 가전업체들은 한정된 물량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 놓였다.
블룸버그는 “이로 인해 발생한 가격 급등은 마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초인플레이션을 연상케 한다”면서 “특정 종류의 D램 가격은 12월부터 1월까지 75%나 폭등했고, 이는 연말연시 분기 내내 가격 상승세를 가속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점점 더 많은 소매업체와 중간 유통업체들이 매일 가격을 변경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램마게돈’(RAMmageddon: ‘램’과 최후의 전쟁라는 뜻의 ‘아마겟돈’의 합성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또 “더 우려스러운 점은 AI 거물들이 본격적인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부터 가격이 폭등하고 공급이 마르고 있다”면서 “알파벳과 아마존은 올해 각각 1850억 달러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고 짚었다.
번스타인의 마크 리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가격이 포물선 모양으로 치솟고 있다”면서 “이는 삼성전자ㆍ마이크론ㆍSK하이닉스에는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지만, 전자업계 전반에는 큰 부담이 된다”고 봤다.
실제 칩 공급난은 기업들의 제품 출시 일정과 수익 구조까지 흔들고 있다. 소니는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 출시를 2028~2029년으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닌텐도 역시 스위치2 가격 인상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오미ㆍ오포ㆍ트랜션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2026년 출하량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으며, 오포는 예측치를 최대 20%까지 삭감했다.
한 노트북 제조업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삼성전자가 메모리 공급 계약을 연 단위가 아닌 분기 단위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시스코는 메모리 부족을 이유로 실적 전망치를 낮췄으며, 퀄컴과 암(Arm) 역시 향후 추가적인 여파를 경고했다.
노르웨이 IT 기업 아테아 CEO 스타이너 손스테비는 “우리는 지금 시간 단위로 대응해야 하는 폭풍 한가운데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의 DIY PC 성지인 선인상가에는 평소 활기가 가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한 가게 상인은 “내일 가격이 더 오를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차라리 오늘 장사를 안 하는 게 현명할 정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메모리 부족 사태는 코로나19 사태때보다 더 구조적 위기로 여겨진다. 코로나19시기에는 재택근무 수요 급증이 배경이었지만, 이번에는 AI 중심 산업 구조 변화가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메타ㆍ마이크로소프트ㆍ아마존ㆍ알파벳은 AI 알고리즘을 학습하고 호스팅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2024년 2170억 달러에서 작년 약 3600억 달러로, 그리고 2026년에는 6500억 달러로 투자액을 늘릴 것으로 추산된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 세계 메모리 산업만큼 큰 변화를 겪은 분야는 드물다. 챗GPT 등장 이후 3년 동안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ㆍ마이크론은 엔비디아와 AMD의 AI 가속기에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연구ㆍ개발ㆍ생산에 집중했다 이는 휴대전화와 같은 기본 전자 기기에 사용되는 일반 D램 생산 설비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대만 타이베이에 본사를 둔 컨설팅회사 트렌드포스는 올해 한 해 동안 HBM 수요가 전년 대비 7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HBM이 전체 D램 웨이퍼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19%에서 2026년 23%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D램이 저가형 스마트폰의 부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5년 초 10%에서 30%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이러한 변화가 가격 경쟁력이 부족한 저가형 스마트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과거의 일시적인 부족 사태와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면서 “메모리 산업 특유의 호황과 불황 주기가 AI라는 거대한 수요에 의해 파괴되고, 장기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리스타네트웍스의 제이슈리 울랄 CEO은 “메모리는 이제 AI와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황금’이 됐다”며 “앞으로는 미리 계획하고 자본력을 갖춘 자들만이 살아남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