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임기 사전 규제보다
이사회 책임·분리가 관건”

여당과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재임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법안 발의를 검토하면서 금융권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부패한 이너서클’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지만, 글로벌 투자자 시각에서는 연임 횟수 자체보다 견제 구조의 실효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온도 차가 감지된다.
9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라스 루이스가 최근 공개한 의결권 정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장 연임이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의 겸직은 자동적인 반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글라스 루이스는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주주에게 반대표 행사를 권고하지는 않는다고 명시했다. 다만 의장과 CEO의 역할 분리 여부가 주주총회 안건으로 직접 상정될 경우에는 분리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다. 회장 연임을 법적으로 차단하는 방식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해외 자문사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해외 자문사들이 중시하는 핵심 판단 기준은 이사회가 실제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이사회 구성원의 독립성, 감사·보수·지배구조위원회의 독립적 운영, 사외이사의 실질적 역할 수행 여부가 주요 평가 요소로 제시된다. 이러한 견제 장치가 작동한다면 장기 연임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의미다.
주주 반대에 대한 이사회의 사후 대응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이나 경영진 관련 안건에 대해 20% 이상 반대가 발생할 경우 이사회는 주주와의 소통, 제도 개선 또는 충분한 설명 등 최소한의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글라스 루이스의 기본 원칙이다. 반대 비율이 과반에 달하면 보다 강도 높은 구조적 조치가 요구된다. 반대표 자체보다 사후 대응이 미흡할 경우 차기 주총에서 관련 이사나 지배구조위원장에 대한 반대 권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추진 중인 ‘연임 횟수 제한’ 방식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정부·여당은 회장 재임 기간이 6년을 초과할 경우 권한 집중의 위험 신호로 보고 이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사전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작동 여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방식에 무게를 둔다.
업계에서는 회장 연임 제한 논의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경영 자율성을 제도로 억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사회 견제 기능 약화가 문제라면 어떤 행위와 구조가 기준에 해당하는지부터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인 평가 기준 없이 재임 기간만을 잣대로 규제에 나설 경우 지배구조의 질적 개선보다는 형식적 요건 충족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지주는 이미 금융당국 감독과 내부통제·리스크관리 체계를 갖춘 업권인 만큼 일반 기업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구조적 차이가 크다는 점도 거론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임 자체가 문제라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부터 입증돼야 한다”며 “일률적인 재임 기간 제한보다 이사회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하는 접근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회사에서 이사회 기능이 약하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입법을 통한 보완도 가능하겠지만, 그 판단 기준이 객관적으로 제시됐는지가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