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고환율 국면에서도 해외주식 투자를 오히려 확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당국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가 환율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경계해 온 상황에서 달러 수급 불균형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제수지 통계상 ‘일반정부’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40억858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39억7540만 달러)보다 2.8% 늘어난 수치다. 일반정부에는 국민연금이 포함된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를 포함하는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52억7030만 달러에서 20억1150만 달러로 한 달 만에 61.9% 급감했다. 국제수지 통계에서 일반정부는 국민연금, 비금융기업 등은 이른바 ‘서학개미’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가 국민연금의 약 1.5배에 달했지만 12월에는 국민연금이 개인투자자의 두 배 이상으로 역전됐다. 전체 내국인 해외주식 투자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1월 31.7%에서 12월 34.5%로 확대됐다.
문제는 당시 환율 여건이다. 지난해 12월 원·달러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월평균 환율은 11월 1457.77원에서 12월 1467.40원으로 약 10원 상승했고, 장중에는 1470원대를 상회하다가 24일 한때 1484.9원까지 급등했다. 이에 외환당국이 강도 높은 구두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부터 국민연금을 외환시장의 ‘큰 손’으로 지목하며 공격적인 해외주식 투자가 환율 상승 기대를 자극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1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기에는 국민연금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고 언급했다.
이어 지난달 28일 홍콩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지난해 10~11월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국민연금의 지속적인 해외투자 확대를 다시 거론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투자가 원화 약세 기대를 키우고 이는 다시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 확대를 부추기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한은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과 함께 이른바 ‘뉴 프레임워크’를 논의해 왔다. 국민연금의 적정 환 헤지 수준을 점검하고 달러 조달 방식을 다변화하는 방안이 검토 대상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입장은 외환당국의 인식과는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노후자금 운용과 연금 고갈 시점 지연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해외주식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서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해외투자 확대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환율 상승을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증가로 단정 짓는 데 대해서도 선을 그으며 대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60~1470원대의 높은 수준에서 등락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이 쏠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에서 한두 달 내 환율이 1400원 안팎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을 언급했지만, 외환시장은 아직 뚜렷한 안정 흐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두 달간 약 50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환율 방어에 나섰음에도 시장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