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최병일 변호사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 재판은 가장 뜨거운 감자입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고, 그 진술이 ‘일관성’만 갖춘다면 유죄의 철퇴를 내리는 것이 최근의 경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필자가 변론하였던 A가 직장동료인 피해자로부터 강제추행과 준강간미수라는 무거운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무죄 판결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진실은 눈물 속 아니면 차가운 사실 속 중 어디에 있는가?"
첫 번째 공소사실은 강제추행이었습니다. 피해자는 친한 직장동료인 A가 갑자기 등을 내밀며 자신을 때려보라며 피해자를 껴안거나 신체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자 내역에서 찾아낸 결정적 모순은 피해자와 A 사이에 사건 직후 당일 있었던 '목걸이 문자'였습니다.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점 직후, 피해자는 A에게 “목걸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하였고, 그 뒤 A는 피해자의 목걸이를 찾으러 술을 마셨던 곳으로 갔으며, 그 일련의 과정에 있었던 일은 방금 성추행을 한 가해자와의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지극히 차분하고 일상적인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공포에 떨었다"는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을 뿌리째 흔들었고, 재판부는 이를 범죄 피해자의 일반적인 반응으로 보기 어렵다며 강제추행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더 심각한 혐의는 준강간미수였습니다.
두 번째 공소사실은 A가 피해자와 술을 마시다가 인사불성이 된 피해자의 집을 알지 못하여 호텔로 데려다준 뒤 피해자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사 단계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진술은 구체적이었고 처절했습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깨어보니 옷이 벗겨져 있었다"는 그녀의 호소는 A를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아넣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견고해 보이던 피해자 진술의 성벽에는 균열이가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인이 주목한 것은 피해자의 '감정'이 아니라 현장의 '물증'과 '객관적 정황'이였습니다.
첫째, '주량의 역설'입니다. 피해자는 A가 강제로 술을 권해 만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평소 술을 즐겼으며, 그날도 자발적으로 잔을 채웠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의 기초가 되는 전제부터 흔들린 것입니다.
둘째, '현장의 침묵'입니다. 피해자는 A가 옷을 강제로 벗겼다고 주장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물증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A는 만취한 피해자가 구토하자 이를 묵묵히 치우고, 물티슈와 봉투를 이용해 뒷정리까지 마친 뒤 호텔을 떠났습니다. 성범죄를 목적으로 한 사람이 범행 전후에 피해자의 구토물을 정성스럽게 치운다는 것이 과연 경험칙상 가능한 일인가? 라는 의문을 남겼습니다.
셋째, '제3자의 증언'입니다. A는 술을 마셨던 곳의 사장과 함께 만취한 피해자를 데리고 호텔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피고인과 피해자와 전혀 알지 못하는 주점 사장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A는 수소문 끝에주점 사장을 찾았고, 주점 사장이 말한 그 날 술자리에서의 일, 호텔 내부에서의 일은 피고인이 말한 당일의 상황과 일치하였습니다.
법원은 결국 A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만큼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으며, 이는 형사법의 대원칙인 '인 두비오 프로 레오(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충실히 따른 결과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형사처벌은, 단지 피해자의 '그럴듯한 진술'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객관적 진실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감수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고한 피고인’을 만드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판결은 자극적인 폭로와 눈물보다, 사건 직후 남겨진 ‘목걸이 문자’와 같은 객관적 사실이 진실을 밝히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례였습니다.
진실은 때로 화려한 변명보다 사소한 기록 속에 숨어 있는 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