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너머] 나라 곳간지기의 공적 인식

"아니, 의원님. 인생이 그렇게 계획대로 안 되지 않습니까"

25일 지명 철회된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3일 인사청문회에서 "원펜타스 청약을 넣을 때 이미 세종에서 일을 하고 결혼한 장남이 부양가족으로서 가점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라는 야당 의원 질의에 내놓은 답변(?)이다. 장남이 결혼은 했지만 이후 부부관계가 틀어지면서 미혼 상태로 남아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청약 공고 이후 장남 며느리의 움직임을 보면 석연치 않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미혼으로 남았던 장남은 이 후보자 일가의 '로또 청약' 당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장남 며느리는 공교롭게도 시댁 청약일정에 맞춰 용산 신혼집 전출입을 반복했다. 특히 원펜타스 부정 청약 조사 결과 발표 이튿날 장남이 신혼집에 전입하고 같은 해 혼인신고를 마친 대목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계획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더 키웠다.

이 외에도 용산·세종집 전세권 등기 등 부정 청약을 가리키는 정황은 적지 않지만 이 후보자는 부정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후보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장남의 서울-세종 왕복 교통 내역도 제출하지 않았다. 기획처 실무진이 "이런 자료는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음에도 후보자 측은 "자료가 없다"는 취지로 난색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700조 원이 넘는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처 장관에게 고도의 공적 인식은 최소한의 조건이다. 과거 후보자가 공적 판단에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그 기준을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이 후보자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했는지는 의문이다.

기획처 안팎에서는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위원 활동 경험이 있기에 청문회에서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예상했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명을 수락한 것은 본인 판단으로는 청약, 갑질 논란 등이 중대 결격 사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본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결국 이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이 후보자 지명 철회를 결정했다.

보수 계열 정당 3선 의원에 경제전문가로 활약해 온 이 후보자 지명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통합과 실용 인사라는 명분으로 이뤄졌지만 그동안 제기된 논란과 해명 과정을 보면, 공직 후보자로서 적절하지 못했다. 청와대 역시 국무위원 인선 기준과 검증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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