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산업 발전 위해 규제 개선·자금 순환 구존 정비해야[전문가 진단]

중국 바이오 산업의 급부상은 더 이상 선언적 구호나 미래 전망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빅파마와의 초대형 기술이전 계약, 급증하는 임상 파이프라인, 국가 주도의 장기 전략이 맞물리며 중국은 글로벌 신약 개발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을 단순한 경쟁자로만 인식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며 “경쟁을 전제로 하되, 협력 전략을 병행하지 않으면 한국 바이오 산업의 성장에도 한계가 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중국 바이오산업의 변화를 ‘속도’보다 ‘방식’의 문제로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바이오를 키우겠다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국가 전략 안에 매우 정교하게 끼워 넣었다”며 “5개년 계획 단위로 세부 로드맵을 만들고, 계획에 따라 규제·자본·인재 정책을 동시에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자본 투입 규모에서 이미 판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은 우리나라의 10배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고, 1조 원이 넘는 대형 펀드를 통해 창업과 연구개발을 동시에 밀어줬다”며 “이런 자금 환경 속에서 바이오 벤처들이 실패를 감수하며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 환경 개선에도 적극적이었다. 이 부회장은 “중국은 5개년 계획에 맞춰 혁신 기술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임상과 허가 규제를 빠르게 정비했다”며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던 중국계 연구자와 제약 전문가들을 높은 보수로 영입해 연구 수준도 단기간에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최근 중국 기업과 글로벌 빅파마 간 빅딜 소식이 연이어 알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특히 2022년 이후 중국 기업들의 기술이전 계약 규모와 선급금이 급격히 커졌다”며 “이는 중국 파이프라인이 글로벌 기준에 도달했음을 시장이 인정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혁신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임은 틀림없지만 아직 한국이 스스로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낼 단계는 아니다”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얼리 스테이지의 벤처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기술에 대한 규제 개선, 시장의 원활한 자금 순환 구조 정비 등 제도적인 환경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 자문위원인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중국의 국가 단위의 바이오 산업 육성이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종합 국가계획을 수립할 때마다 바이오를 핵심축으로 포함시켜왔다”며 “성(省) 단위로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첨단 바이오산업을 관리·육성하는 법적·제도적 틀을 함께 만들어왔다”고 설명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 정책도 경쟁력의 원천으로 꼽았다. 정 원장은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환급을 적용해 기술 자립과 첨단 산업 육성을 가능하게 했다”며 “인재 유치에도 힘써 해외에서 활동하는 인재를 대거 흡수했다. 이 같은 정책이 단기간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현재 중국 바이오 산업의 진짜 힘은 ‘미래 잠재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상 파이프라인을 보면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미국 수준으로 높아졌고, 특히 임상 1~2상 초기 단계 파이프라인이 매우 많다”며 “이는 향후에도 파이프라인이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항체약물접합체(ADC)가 대표 사례다. 정 원장은 “최근 글로벌 빅파마와 체결된 ADC 라이선스 계약의 60~70%가 중국 기업 자산”이라며 “미국이 생물보안법으로 중국 성장을 견제하려 하지만,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등 최근 흐름을 보면 중국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생물보안법에 대해서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정 원장은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중국 기업을 압박하더라도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이 이를 흡수할 수 있다”며 “미국에서 중국과 협력하지 말라고 해도 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정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글로벌팀장은 현장의 변화를 언급했다. 서 팀장은 “과거 중국을 저가 생산기지로 인식하던 시각은 이미 유효하지 않다”며 “최근에는 기술 협력과 공동 개발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에 다시 접근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올해 중국에서 열리는 대규모 바이오 행사에 한국 대표단을 꾸려 지원할 계획이다. 서 팀장은 “올해 국내 기업 20개사 지원을 계획했는데 44개의 기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중국 시장을 두드려보자는 의지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과거 일반적인 제품 수출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기술 수출이나 파트너십 중심으로 중국 바이오 시장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3명의 전문가 모두 중국 바이오산업이 이미 글로벌 시장의 핵심축이 된 만큼 단순 경쟁 구도로 대응하기보다는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내 바이오산업을 위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중국과의 협력을 반복적으로 이어가며 기술과 자본, 브랜드를 축적해야 한국에서도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미국 자본이 들어간 생산과 연구도 결국 글로벌 시장 전체를 놓고 움직이는 만큼, 어느 한쪽에만 무게를 싣는 전략은 위험하다”고 당부했다.
정 원장은 “시간이 지나면 (생물보안법과 관련한) 규제는 완화되거나 형태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경쟁력 있는 기술은 외면할 수 없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서 팀장은 “의약품 전 주기를 한 나라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중국 기업들이 오랜 기간 투자와 시행착오를 거쳐 기술 역량을 쌓았고 그 결과 지금의 빅딜로 이어졌다. 중국과의 협력은 분야를 선별해 신중하게 접근하되,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