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생물보안법 “글로벌 지역과 민간 제약바이오 시장 포괄 제재 아냐”

미국에서 중국을 겨냥한 생물보안법이 통과되며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 재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중국의 영향력을 단기간에 약화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한다. 원료의약품(API)부터 중간체, 위탁개발생산(CDMO), 임상시험수행(CRO), 가격 경쟁력까지 제약바이오 전 주기에서 중국이 이미 핵심 가치 사슬을 장악하고 있어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국 의회에서 생물보안법을 담은 국방수권법(NDAA)이 의결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했다. 법안에는 ‘우려 대상 바이오 기업’으로 지정되면 연방정부 및 산하 기관이 해당 기업의 장비·서비스 조달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정부 자금이 투입되는 연구·조달·임상·공공 프로젝트 전반에서 해당 기업과의 거래를 사실상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법률·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기업 배제를 넘어 규제 범위를 크게 넓혔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 로펌 폴리 호아그(Foley Hoag)는 최근 분석에서 “생물보안법은 특정 기업의 장비나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고, 바이오 데이터 처리·유전체 분석 등 관련 서비스 전반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며 “연방기관의 연구 계약과 조달 구조가 ‘우려 대상 기업’ 개념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정책의 의도와 산업 현실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많다. 생물보안법은 연방정부 자금과 공공 조달망을 중심으로 설계된 법안으로 글로벌 민간 시장까지 포괄하는 제재는 아니다. 유럽과 동남아, 중동, 중남미 등 다수 지역에서는 동일한 규제가 도입되지 않았고 다국적 제약사들의 자체 자금으로 진행되는 연구·임상·생산 프로젝트는 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 사업에서는 중국을 배제할 수 있겠지만 글로벌 임상과 생산 일정에서 중국을 완전히 제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한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중국 CRO나 CDMO를 제외하면 임상 일정이 지연되거나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법이 적용되지 않는 민간·제3국 시장에서는 중국과의 거래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지난해 말 ‘중국 바이오제약 산업의 부상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국은 기초 연구(R&D)부터 임상시험, 생산,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 생태계를 이미 구축한 상태”라며 “일부 공정이나 기업을 규제로 차단하더라도 산업 전반의 구조적 영향력을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미 API와 중간체는 물론 시약·효소·배양배지 등 기초 인프라부터 CRO·CDMO, 유전자 합성, 세포주 제작까지 밸류체인의 하부 공정을 폭넓게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합성생물학,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메신저리보핵산(mRNA) 플랫폼,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설계 등 첨단 분야에서도 독자적 역량을 축적하며 글로벌 바이오 산업의 필수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급망 재편의 방향 역시 ‘중국 배제’보다는 ‘중국 우회’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대외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남아·인도·중동 등으로 이전한 생산·임상·소싱의 상당 부분을 중국 기업이 주도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겉으로는 중국과 거리를 두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인 교류와 거래는 형태를 바꿔 지속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바이오 산업의 위치도 중요해지고 있다. KISTEP은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글로벌 제약사들은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할 대체 파트너를 찾게 될 것”이라며 “글로벌 규제 신뢰와 품질 경쟁력을 갖춘 한국은 특정 공정과 단계에서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