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적 인공지능(소버린 AI)’ 논쟁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선택지가 더는 국산이냐 글로벌이냐의 이분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국가가 책임지고 통제해야 할 영역과 글로벌 협력에 맡길 영역을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최종현학술원 과학기술혁신위원회는 14일 'AI 주권 시대, 대한민국의 선택'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초거대 AI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추격의 속도전’에서 벗어나 국가 이익의 기준과 우선순위를 먼저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버린 AI에 올인하거나 글로벌 AI에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선택 모두가 장기적으로는 위험하다는 판단이다.
보고서는 AI 주권을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능력’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대신 국가가 통제권과 책임을 행사해야 할 지점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행정·안보·공공 서비스와 직결된 데이터와 핵심 인프라는 외부 변수에 맡기기 어려운 국가 책임 영역으로, 반면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나 민간 활용 거대언어모델(LLM)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영역인 만큼 글로벌 생태계와의 연계를 활용하는 전략이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됐다.
오픈소스에 대한 경계도 분명히 했다. 오픈소스가 중립적이고 개방적인 선택지로 인식되지만, 장기간 무료 제공 이후 라이선스 조건이나 접근 권한이 바뀔 수 있는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 핵심 디지털 인프라를 글로벌 민간 기업의 전략 변화에 의존하는 것은 구조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오픈소스 자체가 아니라 이를 국가 전략의 전제로 삼는 접근이라는 설명이다.

소버린 AI를 둘러싼 비용과 정책 연속성 문제도 짚었다. 초거대 모델 개발은 단발성 투자가 아니라 연산 인프라 확충과 운영 비용을 장기간 감당해야 하는 구조인 만큼 정권 교체나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사업이 흔들릴 가능성 자체가 전략적 리스크라는 분석이다. 성능 검증이 충분치 않은 국산 LLM을 모든 분야에 일괄 적용하거나 강제하는 방식은 기술 주권과 거리가 멀다는 경고도 담겼다.
보고서는 또 AI 전략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국가가 모든 기술 개발을 직접 주도하기보다, 통제 기준과 책임 구조를 설계하고 안정적인 수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 부문이 행정 자동화와 같은 영역에서 초기 사용자로 참여해 시장 리스크를 분담하는 역할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는 최종현학술원 과학기술혁신위원회 AI 전문위원과 외부 전문가 12명이 참여한 심층 논의를 바탕으로 마련됐다. 산업계에서는 김지원 SK텔레콤 AI 모델 연구소장과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 AI 기술총괄 등이 현장 관점을 제시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최종현학술원 이사장도 논의에 참여해 AI 주권을 둘러싼 산업 전략과 사회적 함의를 종합적으로 짚었다.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는 “AI 주권은 모든 것을 직접 만들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국가가 통제해야 할 영역과 글로벌 협력을 활용할 영역의 경계를 설정하는 전략적 결정”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경쟁의 속도보다 국가 차원의 목표와 책임 범위를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