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MSG] '실수니까 괜찮다'는 말, 법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 (게티이미지뱅크)

"실수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아이에게 다시 도전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아이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므로 그 말이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학폭)이나 소년보호사건에서 "실수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갈등의 출발점이 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충북 청주의 한 학폭 피해 학생 측 부모는 18일 충북교육청에 행정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친구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거나 괴롭힌 중학생들에게 아무런 처분을 하지 않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처분 결과가 부당하다는 것이다.

앞서 청주교육지원청 학폭위는 중학생 3명이 또래를 폭행하고 괴롭혔다는 주장과 관련해 가해 학생 2명을 '학교폭력 아님'으로 심의하고, 1명에 대해서만 학폭으로 결론 내렸다. 반면 경찰은 고소장에 제기된 대부분의 가해 행위가 인정된다고 보고 이달 초 가해자들을 청주지법 소년부에 송치했다.

이번 사건은 아니지만, 학폭위 회의록을 보면 거의 빠지지 않는 표현들이 있다. "애들이 친해서 실수한 거예요" "장난이 조금 커졌을 뿐이에요" "실수예요" 등이다. 학폭 사안에서는 가해자 부모들이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피해자 부모가 법적 대응을 결심하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실수'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전혀 가볍지 않다. 책상을 친구에게 던진다거나, 이성 친구의 종아리를 만진다거나, 심지어 친구의 얼굴 사진을 성적인 이미지와 합성해 유포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장난이다" "실수다"라고 말하는 순간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침해가 축소되고 무시당한다고 느낀다.

그때부터 문제는 단순한 학교 내 갈등이 아니라, 반드시 공식 절차로 다퉈야 할 사건으로 비화한다. 피해자 부모로서는 더 이상 대화로 해결할 여지가 없다며 단호하게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소년부 사건에서 재판장은 "실수니까 괜찮다"는 취지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재판장이 판단하는 건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다.

그래서 보호처분을 정할 때는 반성문보다도 가정에서 어떤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지, 보호자가 자녀의 문제행동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지를 본다. 이때 부모가 여전히 "아이의 실수", "장난"이라는 표현으로 사건을 축소하면, 재판부는 가정환경과 보호자의 보호·감독 능력을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무거운 보호처분으로 이어진다.

성인들도 수사기관 조사나 재판에서 "실수였다"는 언급을 자주 한다. 제일 많이 듣는 곳은 음주운전 사건이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음주에 이어 운전대를 잡았지만, 책임은 실수로 덮으려 한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이를 명백한 위험 인식과 책임 판단의 문제로 볼 뿐이다.

최근에는 성범죄에서도 실수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실수로 에스컬레이터에서 여성 치마 속을 찍었다거나, 실수로 상대방을 껴안았다거나, 술김에 실수로 강간하려 했다는 주장까지 한다. 촬영 버튼을 누르고, 신체를 접촉하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 행위를 시도한 행위는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고의다.

이보라 변호사는 "타인의 인권과 안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 반복 가능성이 있는 위험 행위는 실수가 아니다"라며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을 하려면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같이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아이를 더 위험한 자리로 밀어 넣는 말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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