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하는 '피싱' 범죄, 참혹한 대가 치른다 [서초동MSG]

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가 21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사 재판에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유형의 범죄가 '피싱'이다. 최근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캄보디아 스캠 사기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에 사용되는 대포통장 대여, 대포폰 공급 등은 하나의 거대한 범죄 산업으로 형성되는 모습이다. 여기에 연루된 범죄자들 대부분은 높은 형량을 선고받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5부(김양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모 씨에 대한 범죄조직가입 혐의 사건 1심 공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정 씨는 캄보디아에 거점을 두고 '마동석'이라 불리는 총책의 지시를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 '한야콜센터'에서 일하며 피해자 6명에게 약 3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앞서 법원은 8월 한야콜센터의 다른 조직원들에게 징역 1년 6개월~6년에 이르는 선고를 내린 바 있다.

주변 범죄를 살펴보면, 해외 취업을 미끼로 피싱의 전화 상담원 역할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합숙하며 리딩방 등 피싱에 투입되거나 통장 등을 빼앗기며 단기간 내에 통제 상태에 놓이는 사례는 흔하다. 이들은 불과 며칠 만에 도망을 나왔다고 하소연하더라도, 대부분은 구속돼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에 가면 범죄 수익은 국가에 환수되고, 몰수·추징으로 재산 대부분을 잃게 된다. 해외라서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귀국 즉시 체포되는 경우가 많다. 한 의뢰인은 한국에 남은 자녀를 만나고 싶어 귀국을 결심했지만, 입국 즉시 체포가 예견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합숙하며 일하던 사람들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경우도 봤고, 이를 질투하며 내부 분열이 생겨 재판 과정에서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초반에는 고소득을 약속받아 먼저 일하다가 친구·친척들을 끌어들여 조직으로 일하게 된 일도 있었다. 결국에는 이들 모두 함께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대포통장 양도)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어려워서", "몇만 원만 벌면 된다고 해서"라며 눈물로 호소한다.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중고거래 플랫폼 광고 등을 통해 '통장 빌려주면 사례금 지급'이라는 문구에 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가는 참혹하다. 통장을 넘기면서 받는 돈은 고작 몇만 원에서 수십만 원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해 내려지는 벌금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달한다. 물론 형사 전과도 남는다.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에 가담해 구금된 한국인들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날 송환에는 경찰 호송조 190여명이 투입됐다.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다. 대포통장으로 한 번 등록되면 금융거래가 제한되고, 본인 명의 계좌 개설이 어려워진다. 만약 자신이 양도한 통장을 이용해 누군가 사기 행위를 저질렀다면, 피해자들로부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수도 있다.

"통장이 범죄에 이용될 줄 몰랐다"는 해명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원은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양도하는 행위 자체가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행위"라고 판단할 뿐이다.

대포통장, 대포폰 업자들은 형량이 훨씬 무겁다. 벌금형에 그치는 단순제공 혐의와 달리 별지 범죄일람표를 가득 채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죄의 숫자가 많다.

특히 유통 조직 내 조직원들은 명의자를 모집하는 '모집책', 명의자들의 정보를 이용해 대포폰을 개통한 후 지정하는 장소로 대포폰을 전달하는 '개통책', 개통된 대포폰을 전화금융사기 범죄 조직 등에 판매하는 '판매책', 대포폰을 건네받아 이를 전화금융사기 범죄 조직 등에 전달하는 '전달책' 등으로 나뉜다.

법원은 이를 각각 역할을 분담하는 판단해 조직적·계획적 범행으로 본다. 게다가 범행의 위법성 및 다른 중대한 범행과의 연계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보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죄책의 최하위 단계의 조직원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기도 하고, 실형이 선고될 때가 많다.

이보라 변호사는 "과거에는 말단 수금책이나 운반책에 대해 '자신의 행위가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인식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이 있었으나, 현재의 법원은 다르게 본다"며 "사전의 치밀한 공모가 없어도 공범자 간 범행 수행에 대한 상호 이해가 있으면 공동정범으로 판단한다. 범죄단체조직죄로 처벌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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