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도 공급 시동걸었지만...서울은 비었고 갈등은 쌓였다 [9·7대책 100일]

9·7대책 100일, 경기·인천 물량 집중에 서울 도심 공급은 ‘주민 반발’

정부가 9·7 공급대책을 발표한 지 100일이 지났다. 2030년까지 수도권에 총 135만 가구 규모의 신규 주택 착공을 추진하겠다는 계획 아래 공공주도 공급 확대 조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주민 반발과 서울시와의 갈등으로 정책 추진이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9월 7일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도봉구 성균관대 야구장(1800가구), 송파구 위례신도시 업무시설 용지(1000가구), 한국교육개발원 용지(700가구), 강서구 가양동 별관 이전 예정 용지(558가구) 등 도시 유휴부지 4곳에서 약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한국교육개발원 용지에 대해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제안하고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을 발주했지만, 주민들은 “민간 개발에 비해 주거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반대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수도권 공급의 핵심지로 꼽히는 서초구 서리풀지구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는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해 서리풀 1·2지구에 총 2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이달 초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을 통해 보상 절차를 최대 1년 앞당기는 등 속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주민들은 공청회 자체를 거부하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업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 도심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국토부와 서울시의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양측의 엇박자도 불안 요소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산정비창 부지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약 45만6099㎡ 규모의 부지에 업무·주거·상업 기능을 결합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주택 공급 규모를 두고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는 기존 6000가구 수준 유지를 주장하는 반면, 국토부는 1만 가구 이상 공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울시와 협의해 가능한 한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같은 날 “가구 수를 늘리면 학교·교통·생활 인프라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해 기본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며 “속도를 포기한 물량 중심 공급은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정부는 수도권 공공택지 내 유보지에 대한 용도 전환을 통해 주택 공급을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유보지는 공공택지 지구계획 단계에서 장래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용도를 확정하지 않고 남겨둔 부지다. 앞서 국토부는 9·7 대책을 통해 LH가 보유한 비주택용지를 주택용지로 전환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1만5000가구 이상을 착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LH가 보유한 수도권 공공택지 유보지는 경기 9곳(134만6000㎡), 인천 2곳(260만6000㎡) 등 총 11곳, 395만2000㎡ 규모다. 이들 부지를 모두 주택용지로 활용할 경우 용적률 200%, 효율 80%, 가구당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최대 7만5000가구 공급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LH는 실제 공급 규모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일부 유보지는 상업·자족·공공시설 기능을 전제로 남겨둔 곳이어서 전부 주택용으로 전환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LH는 지난달 말 국토부에 △3기 신도시 남양주 왕숙 유보지 1만8000㎡(455가구) △2기 신도시 파주 운정3 유보지 27만4000㎡(3200가구) △중소택지 수원 당수 단독주택용지(490가구) 등 용도 전환을 통해 우선 41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 변경안을 제출했다. 이와 함께 2기 신도시 평택 고덕 유보지(26만3000㎡)에 대해서도 주택용지 전환을 놓고 관계기관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정부는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자 지난달 말 내년 수도권에 2만9000가구의 공공분양 물량을 공급하겠다고 추가로 밝혔다. 이는 9·7 대책 당시 제시한 목표치(2만7000가구)를 웃도는 수준으로, 정부는 “판교급 신도시 하나를 추가로 조성하는 규모”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물량의 대부분이 경기와 인천에 집중되면서 서울 수요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지역별로 보면 내년 공공분양 물량 가운데 경기 2만3800가구, 인천 3600가구로 전체의 약 95%를 차지한다. 서울 공급은 고덕강일 3블록 1305가구가 사실상 전부다. 문제는 공급이 집중되는 지역 상당수가 수요가 부진하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누적 매매가격은 8.06% 상승한 반면, 경기는 1.05% 상승에 그쳤고 인천은 0.75% 하락했다.

수도권 공공주택은 입지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에 조성되면서 미분양이 반복된 전례도 적지 않다. 인천 검단 AA21블록은 1224가구 중 100여 가구가 여전히 미분양 상태이고, 2020년 12월 공급된 고양 장항 A-4단지 역시 994가구 중 48가구가 5년이 지난 현재까지 분양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르면 연말 안에 추가 공급대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본지 자문위원인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현재 9·7대책으로 인한 공급이 생각 만큼 잘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평가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무엇보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지금처럼 엇박자가 난다면 공급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공급효과 극대화를 위해선 두 기관의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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