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국가유산청이 사적 보상 신청을 중단하면서 주민들은 10년간 재산권을 침해당했습니다.”(풍납동 3권역 주민 일동)
소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는 대규모 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고가 부동산이 즐비한 지역이다. 그러나 풍납동은 같은 강남3구 안에 있으면서도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다.
저층 주택이 늘어선 풍납동에는 골목마다 펜스가 설치돼 있고, ‘문화유산 발굴지역’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황폐한 토지만 남아 있다. 풍납동 저층 주택가 너머로는 국내 최고층 빌딩인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솟아 있다. 같은 구 안에서도 극명한 격차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주민들은 풍납토성 문화재 규제로 인한 재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풍납동 일대 건물들은 1980년대 지어지며 노후화됐지만 1997년 백제시대 성곽인 풍납토성 유물이 발견된 뒤 건축 규제가 적용됐다. 이후 권역별로 개발과 문화재 보존이 병행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재산권 침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풍납동 1~2권역은 보존구역으로 매입 등 주민 이주가 추진되고 있으며 3권역은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이 가능하지만 백제 문화층 유존 지역으로 묶여 지상 7층·21m 이하의 건물만 지을 수 있다.
2권역과 3권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재산권 침해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2권역 주민들은 이주 과정이 협의 계약이 아니라 사실상 강제수용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풍납동에서 45년을 거주한 원주민 A씨는 “‘문화재 지역’이라는 이유로 소유권을 넘기면 그 시점부터 집은 서울시 소유가 되는데 보상금이 즉시 지급되지 않고 계약금·중도금·잔금으로 나눠 지급된다”고 말했다. 그는 “잔금 지급이 4주 이상 걸리는 사례가 많아 새 집 잔금을 맞추지 못한 주민들이 대출을 받아 보전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보상액이 실제 대체 주거 마련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A씨는 “다세대·다가구 기준 보상액이 12~13억 원 수준인데 이 금액으로는 서울에서 25평대 아파트 입주가 어렵다”며 “평생 월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원주민들은 주거 수준이 오히려 낮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러한 상황이 30년 가까이 지속해 온 풍납동 문화재 규제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한다. B씨는 “역사문화보존구역 지정 이후 집값·임대수익 등 재산권 가치가 꾸준히 제한됐는데 보상 과정에서도 정당한 절차와 시기가 지켜지지 않으면서 불신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3권역에서는 개발 제한에 따른 피해가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풍납동 일대 곳곳에는 3권역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에는 “풍납동 개발을 막는 2m 굴착 금지 규제 때문에 땅도 못 파고 건물도 못 짓고 엘리베이터는 꿈도 못 꾼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어 “사적 보상 신청 중단 이후 주민들은 10년간 재산권을 침해당하며 꼼짝 못 하고 기다렸다”며 “개발인지 보존인지 정책을 결정하라”고 호소한다.
아파트 종합 플랫폼 호갱노노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풍납동 평당 가격은 7.79%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송파구는 15.9% 상승해 상승률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서울은 8.44% 상승했다.
강남 3구 전역에서 신고가 거래가 잇따르는 것과 달리 풍납동에서는 하락 거래도 나타났다. 동아한가람 아파트 전용 84㎡는 2021년 9월 11일 14억7000만 원에 거래됐으나 지난 8월 30일 10억 원에 매매가 체결됐다. 이전 거래 대비 32%(4억7000만 원) 하락한 수준이다. 신성노바빌 전용 59㎡도 2021년 10월 11억8500만 원에서 3억6500만 원 하락한 8억2000만 원에 거래됐다.
개발 제한으로 인한 재산권 피해가 이어지자 서울시는 풍납동 이주·정주 개선을 위한 용적 이양제 등 실질적 규제 해소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오세훈 시장은 18일 열린 제333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주민 고충을 직접 듣겠다”며 빠른 시일 내 풍납동을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어 풍납동 이주·정주 개선을 위한 용적 이양제 등 실질적 규제 해소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2권역은 조속히 발굴을 시행한 뒤 발굴 완료 지역부터 재정비를 연계해 도시 기능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3권역의 경우 고도 규제와 높이 제한으로 개발이 정체된 만큼 문화재청과 협의해 규제 적정성을 점검하고 주민 재산권 보장과 정주 환경 개선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