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전기' 더 이상 불가능⋯요금 인상 초읽기 [전력대란의 징후]

AI·재생에너지 국정 과제 발목 잡는 한전 재무 위기⋯"전기요금 현실화해야"

▲ 경기 김포 주택가 전기계량기 모습.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재명 정부가 핵심 국정 과제로 내건 '인공지능(AI) 강국' 도약과 '재생에너지 대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현실화가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206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부채와 수십조 원대 누적 적자에 짓눌린 한국전력이 요금 인상 없이는 국정 과제 이행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 재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26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한전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5조6519억 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66.4% 급증했다. 산업용 요금 인상 효과와 국제 에너지 가격 안정이 맞물린 결과다.

그러나 재무제표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2021년부터 쌓여온 누적 적자는 여전히 41조 원(연결 기준 누적 결손금 포함) 수준에 달해, 현재의 흑자 규모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가장 큰 뇌관은 206조2000억 원(올해 6월 말 기준)까지 불어난 총부채다. 한전은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이자 갚는 데 쓰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지출한 이자 비용만 3조2794억 원으로, 하루 평균 약 120억 원을 허공에 날리는 셈이다.

영업이익이 나도 이자를 제하면 원금을 상환할 여력은 '제로(0)'에 가깝다.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전의 재무 위기가 국가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시대에 맞춰 전력망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지능화하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선 한전이 막대한 돈을 들여 송·변전 설비 투자에 나서야 한다.

더욱이 정부가 추진하는 'AI 강국' 비전은 막대한 전력 공급을 전제로 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곳곳에 들어설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향후 10년간 송·변전 설비에만 56조 원 이상의 투자가 요구된다.

하지만 현재 한전의 재무 상태로는 신규 투자는커녕 기존 설비 유지보수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현행법상 한전채(사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로 묶여 있다. 누적 적자가 획기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경우 내년에는 한도 초과로 채권 발행마저 막혀 국가 전력망 투자가 '올스톱'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투자 재원 확보가 어려운 한전으로선 정부의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셈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8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다 보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이를 알려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값싼 전기' 시대의 종언을 공식화하는 셈이다. 기존 에너지원보다 전기 생산 비용이 비싼 재생에너지의 확충은 전기요금 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지적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전기요금은 무조건 올려야 한다"며 "한전의 에너지고속도로 투자 재원 부족도 있지만 현재 한국의 전기는 너무 저렴해 시장에서 '가격 시그널'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4시간 불을 켜두는 상가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에너지 과소비가 결국 비정상적인 요금 구조 탓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그는 "다만 급격한 인상은 민생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차별 인상 로드맵을 제시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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