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여수에 이어 울산 산단 합류 여부 '촉각'…하반기 종합대책 '부활 분수령'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대표하는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등 석유화학(이하 석화) 4개사가 단행한 이른바 ‘여수 1호 사업재편’은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 석화 산업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임을 보여준다.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의 석화 제품 자급률 100% 돌파와 글로벌 친환경 규제라는 거센 파고에 직면하자 어제의 경쟁자들이 사업을 분할·통합하는 ‘합종연횡’을 통해 뼈를 깎는 체질 개선에 돌입한 것이다.
22일 산업통상부와 석화 업계에 따르면 4개 회사가 경쟁사 간 합작이라는 처방을 내린 배경에는 단순한 경기 사이클 하락이 아닌 ‘구조적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큰 위협은 ‘차이나 리스크’다. 과거 한국 석유화학 제품의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최근 수년간 국가적 차원에서 에틸렌 등 기초유분 설비를 공격적으로 증설하며 범용 화학제품 자급률 100%를 넘어섰다.
그 결과 중국은 수입국을 넘어 잉여 물량을 밀어내는 세계 최대의 경쟁국으로 부상했고, 이로 인한 글로벌 공급과잉 현상은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을 직격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친환경 규제 강화 흐름도 전통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인 석화 업계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이 가시화되고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및 탄소 감축 압박이 거세지면서 기존 탄소 집약적인 범용 화학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로는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임계점을 넘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이뤄진 이번 사업재편의 핵심은 만성적 공급과잉의 주범인 기초 범용 제품 라인을 과감히 도려내는 데 있다.
참여 기업들은 향후 3년의 재편 기간 동안 여천NCC의 나프타분해설비(NCC) 2개소(에틸렌 139만톤 규모)를 비롯한 저부가 범용 설비의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과거 ‘물량 떼기’식의 소모적 외형 경쟁을 탈피하고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결단이다. 축소된 생산능력은 철저히 고부가가치 첨단 소재로 채우고 있다. 신설 통합법인은 의료용 LDPE와 의료·식품·위생용 점·접착제 핵심 원료인 POE 등 고부가·친환경 소재로 사업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모기업들은 54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고, 2532억원의 신규 투자를 단행해 대체 성장동력을 신속히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정부 역시 이번 사업재편의 안착 여부가 국가 핵심 기간산업인 화학 생태계의 명운을 가를 것으로 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6500억원 규모의 융자 및 보증 지원, 수입 나프타 무관세(0%) 적용을 통한 원가 절감, 파이프랙 등 인프라 임대료 인하, 고부가 전환을 위한 중장기 연구개발(R&D) 지원 등 총 7000억원이 넘는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가동한다.
산업계와 정부의 시선은 이제 마지막 퍼즐인 ‘울산’으로 향한다. 올해 2월 대산 산단 1호 프로젝트에 이어 여수 산단까지 대대적인 재편에 돌입하면서 국내 3대 석유화학 단지 중 하나인 울산 산단의 합류 여부가 최대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문신학 산업부 차관이 “무임승차 없이 모든 산단이 참여하는 사업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 역시 울산 지역의 신속한 구조개편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중동발 리스크에 따른 공급망 불안과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 심화 등 대외적 ‘복병’이 도처에 널려 있다. 결국 올해 하반기 발표를 앞둔 정부의 ‘석유화학 생태계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에 얼마나 더 정교한 지원책이 포함될지가 국내 석유화학 부활의 최종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