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배상금 전액 취소된 결정적 이유는
판정부, ‘ICC 판정문’ 증거 채택
2년4개월 끈질긴 설득 끝 ‘승소’
ICSID “중대한 절차 위반” 판단
소송비용 73억, 30일 내 지급도
“판정취소 첫 승리…기념비적 사례”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에서 우리 정부가 13년 만에 완승한 배경에는 국제법상 근본적 절차 규칙인 ‘적법절차 원칙(Due Process)’ 준수 여부가 크게 작용했다. 이른바 ‘론스타 사건’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된 최대 규모 ISDS로, 판정 취소 절차에서 최초로 승소한 기념비적 사례로 평가된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19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2023년 9월 취소 신청 제기 전후 2년 4개월 간 취소위원회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정부의 취소 신청은 모두 인용 받음과 동시에 론스타 측 취소 신청은 전부 기각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22년 8월 31일자 중재 판정에서 인정됐던 4000억 원 상당 배상책임은 전액 소급 소멸됐다. 현재 환율 기준 배상원금 3200억 원(2억1650만 달러)에 지연이자(2011년 12월 3일부터 완제일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이자)를 합한 액수다.
법무부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판정 취소를 신청하면서 △중재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유월(월권)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이유 불기재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중재 판정이 취소되기 위해서는 해당 판정이 ICSID 협약이 규정하는 5가지 취소 사유에 해당해야 한다. ICSID 협약은 △판정부 구성 흠결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유월 △중재인의 부패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이유 불기재를 취소 사유로 열거하고 있다.

국가책임 인정→인과관계 역시
연쇄적으로 취소돼야 해” 판시
이 가운데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주장이 13년 만에 한국 정부가 승리한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법무부는 판정부가 국제법상 인정되는 기본적인 절차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경우, 이는 위법한 판정에 해당한다고 물고 늘어졌다.
국내외 정부 대리 로펌은 “판정부는 정부가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 간 국제상업회의소(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변론권, 반대 신문권 등을 박탈해 적법 절차를 위반했다”고 문제 삼았다.

결국 ICSID 취소위원회는 한국 정부 측 ‘중대한 적법절차 위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원 중재판정이 대한민국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한 뒤 이에 의존해 금융위원회의 위법행위와 국가 책임을 섣불리 인정했다고 수긍했다.
그러면서 “국제법상 근본적 절차 규칙인 적법절차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취소위원회는 “원 중재판정부가 ICC 상사중재 판정문 등 적법 절차에 위배된 증거를 채택한 뒤 이에 의존해 금융위의 위법행위 및 그로 인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므로, 원 판정 중 금융위의 위법행위, 국가책임, 인과관계 및 론스타 측 손해를 인정한 부분이 함께 연쇄적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원 판정 중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부분이 모두 취소됐는데, 취소위원회는 취소 절차에서 우리 정부의 취소 신청이 인용되고 론스타의 취소 신청이 전부 기각된 점을 고려해 ‘패소자 비용 부담’ 기준에 의거 론스타로 하여금 정부의 취소절차상 소송비용(법률비용‧중재비용) 약 73억 원을 선고 30일 내 정부에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2023년 5월 정정결정서 원금 6억3500만 원 감액
론스타, ‘배상액 적다’ 취소 신청 제기…정부도 ‘맞불’
이번 중재를 진행해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김준우 변호사는 “13년간 분쟁 장기화로 정부 담당자가 바뀌는 동안에도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일관성 있는 분쟁 전략을 유지한 게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태평양은 2012년 11월 론스타가 ICSID에 중재 신청을 한 이후 미국 로펌 아놀드 앤 포터(Arnold & Porter)와 공동으로 한국 정부를 대리해 전 과정에서 중재 대응을 주도해왔다.
앞서 론스타는 2012년 우리 정부가 한국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46억7950만 달러(한화 약 6조9000억 원)의 손해를 봤다며 ISDS를 제기했다.
2022년 8월 31일 선고된 원 판정에서 ICSID는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에 해당하는 2억1650만 달러를 한국 정부가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론스타 측 청구 금액 가운데 95.4%가 기각된 셈이다.
이듬해 5월 9일 선고된 정정 결정에서는 판정문 오류를 적극적으로 주장해 배상원금 48만1318달러를 감액 받았다.

박일경 기자 ekpark@‧전아현 기자 cahyu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