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몸 갈아넣은 '버티는 협상'⋯러트닉 같은 애국자 존경" [팩트시트]

취임 119일 기자간담회⋯'골프장 오판' 일화 등 막후 협상 소회 밝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 및 MOU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한미 관세 협상 타결과 관련해 "우리가 하고 싶었던 협상이 아니었고, 버텨내야 하는 협상 과정이었다. 직원들과 '몸을 갈아넣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장관은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실제 119일) 기자간담회'에서 "오늘이 공교롭게 취임 119일째다. 대미 협상이라는 119(응급전화)가 울렸는데 119일째 마무리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 타결 당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화상회의를 통해 최종 사인을 주고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김 장관은 "(러트닉이) 갑자기 화상회의를 하자고 해서 긴장했는데, 축하한다면서 (서명지에) 사인하는 것을 보여주더라"며 "전화기를 붙들고 허그도 하면서 마무리 짓게 됐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협상 과정에서 국내의 압박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떤 때는 '왜 빨리 안 끝내냐'는 분들이 있을 때마다 속이 상했다"며 "빨리 끝내는 게 중요한 협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부분이 오히려 협상할 때 저를 더 위축되게도 만들고 부담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협상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러트닉 장관을 만났을 때를 꼽았다.

그는 "러트닉 장관에게 (스코틀랜드로) 가겠다고 연락했는데, (미국 측이) 어디로 오라는 연락을 끊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소유의 골프장이 스코틀랜드에 두 곳(애버딘, 턴베리)이 있었는데, 산업부 실무진이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애버딘으로 추측해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인 5시에 러트닉에게 '자기는 글래스고 근처 턴베리로 간다'는 연락이 왔다"며 "애버딘과 턴베리는 차로 3시간 이상 차이가 났다. 결국 애버딘 공항에 내려 차를 대절해 4시간 이상을 달려 턴베리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트닉이 깜짝 놀랐다. 인바이트(초대)한 것도 아닌데 왔고, 연락도 안 돼서 4시간 이상 차로 오니 인간적인 미안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그날 협상을 두 번 했는데, 그때 (이번에 합의된) 전체 틀의 그림이 그려지는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에 대해 "다혈질 같지만 철저한 미국 애국자란 생각이 들었다"며 "그의 미국의 이익을 위해 모든 걸 던지는 모습에 감명받고 존경하게 됐다. 지금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협상 타결 직전 러트닉 장관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순간이 사람 피가 마르고 심장이 마르는 시간이었다"며 "내리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상한 트윗을 올려 협상이 깨질까 봐 가장 초조했다"고도 했다.

김 장관은 이번 협상의 가장 큰 성과에 대해 "'연간 200억 달러 투자 한도 설정' 등 두 정상이 인정한 '조인트 팩트시트'에 한국 외환시장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 이날 한미가 서명한 양해각서(MOU)보다 더 큰 보람이고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일본과 달리 '한국 기업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하는 조항, '상업적 합리성'을 프로젝트 선정 기준으로 명시한 것 등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전했다.

김 장관은 대미 협상이라는 큰 리스크를 넘긴 만큼 남은 임기 동안 △M.AX(제조업 AI) 얼라이언스 △석유화학·철강 구조조정 △RE100 지역경제 관련 법안 등 3가지 핵심 과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M.AX는 협상과 겹치면 M.AX가 1번일 정도로 가장 챙긴 행사"라며 "M.AX와 지역 RE100 산단을 2개의 성장 엔진으로, 석화·철강 재편을 리스크 관리로 두고 100일간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석유화학 업계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강제적인 방식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석화는 나프타분해시설(NCC)를 줄여나가야 하는 목표가 있다"며 "과거 구조조정은 정부가 주도하고 칼을 빼 드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3개 단지(대산·여수·울산)에서 자율적 협상을 통해 감축안을 만드는 게 좋은 선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차로 대산이 어느 정도 틀을 잡아내고 있다"며 "연말까지 대산이 자구노력과 감축 노력을 합의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좋은 샘플을 만들려 한다. 다른 단지들도 이달 안에 비슷한 방향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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