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로 몰리는 자금…신용융자 26조 돌파 [빚의 질 악화]

코스피 4000선 강세에 신용융자 사상 최대
주도주 쏠림 심화…자본재·반도체 집중 위험

국내 증시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사상 최고조로 치솟았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26조 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썼다. 그러나 이번 상승장은 2021년의 ‘동학개미’ 장세와 다르다. 그때는 풀린 돈이 주식을 밀어 올렸다면, 지금은 막힌 돈이 증시로 밀려드는 국면이다. 금리·정책·심리의 구도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빚투의 ‘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폭락장이 오면 그 충격이 훨씬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6조1198억 원을 기록했다. 7일 잔액(26조2165억 원)이 처음으로 26조 원대를 넘어선 뒤 2거래일 연속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불과 한 달 새 2조 원 넘게 늘었고,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30% 이상 폭증했다.

시장별로는 유가증권시장 잔액이 16조2911억 원, 코스닥 시장은 9조8287억 원이다. 코스피가 올해 들어 70% 가까이 오르면서 유가증권시장 신용융자 잔액은 두 달 만에 13조 원대에서 16조 원대로 급증했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하는 거래로, 주가 상승 시 레버리지 효과를 얻지만 하락 시 손실이 확대되는 고위험 구조다.

2021년 빚투는 코로나19 이후 제로금리·유동성 홍수 속에 폭발했다. 당시 신용융자 잔액은 25조 원을 넘어섰고, 예금금리는 연 0~1%대에 머물렀다. 시중의 유동성이 증시로 몰리며 투자자들은 “지금 안 사면 늦는다”는 ‘포모(FOMO·소외 공포)’ 심리에 휩싸였다.

반면 올해 빚투는 고금리 장기화 속 제한된 유동성 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다. 은행 예금금리가 여전히 연 3~5%대 안팎이고,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묶인 돈이 증시로 이동하는 구조적 흐름’이 나타났다.

빚투의 방향도 달라졌다. 2021년에는 2차전지·바이오 등 신성장 테마주로 분산됐다면, 지금은 반도체·조선·방산 등 ‘국가 성장산업’으로 집중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신용융자 잔액 중 자본재 비중은 27.7%(3조9000억 원), 반도체는 15.8%(2조2000억 원)에 달했다. 이들 업종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가 지수를 직접 흔드는 구조다.

실제 반대매매 금액도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스피가 1.8% 하락한 이달 7일 반대매매 규모는 380억 원으로, 지난해 8월(433억 원) 이후 최대치다. 담보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하는 구조상, 급락장에서는 연쇄 청산이 발생하기 쉽다. 전문가들은 단기 급등장에서 과도한 레버리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융자가 특정 업종에 집중돼 있어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로 인한 가격 하락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며 “이들 업종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장의 안전판이 더 얇아졌다는 것이다. 2021년 당시에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화 장치로 증거금 완화·유동성 공급 등을 즉각 가동했지만, 현재는 ‘고금리 유지·레버리지 관리’가 정책 기조다.

전문가들은 레버리지 투자가 늘고 있지만, 급등 이후 조정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은 “증시가 단기 급등한 데 따른 일시 조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추세적인 상승 흐름은 유지될 것이지만 변동성 확대 가능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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