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모녀 참변에 "한국 음주운전 처벌 수위 약하다"⋯일본은? [이슈크래커]


(연합뉴스)


이 정도는 괜찮아

무지한 관용이 또 한 번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매년 수백 건에 이르지만, 재범률은 줄어들지 않는 음주운전 사고. 효도 여행을 온 일본인 모녀 관광객을 덮쳤는데요. 한국의 음주운전 실태가 일본 언론에까지 오르내렸죠.


▲음주운전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일본인 모녀 중 어머니가 숨진 가운데 3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사거리의 차도와 인도 사이에 세워진 볼라드가 충격으로 휘어져 있다. (연합뉴스)


“효도 여행이 악몽이 됐다” 오사카 모녀 입국 첫날 참변

사고는 2일 밤 10시께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사거리 인근에서 일어났습니다. 소주 3병을 마신 30대 남성 A 씨가 전기차를 몰다 인도로 돌진해 일본인 관광객 모녀를 덮쳤는데요.

50대 어머니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고 딸은 얼굴과 갈비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기준(0.08%)을 웃도는 만취 상태였는데요. 그는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들 모녀는 오사카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해 이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쇼핑을 마친 뒤 낙산 성곽길을 보러 가던 길이었죠. 딸이 직접 준비한 효도 여행 첫날이었습니다.


(출처=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일본 언론, 한국 음주운전 처벌 비판

이 사건은 일본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는데요. 아사히TV, 후지TV 등은 해당 사고를 조명하며 한국의 음주운전 처벌을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은 인구가 일본의 절반 수준이지만 음주운전 건수는 여섯 배를 웃돈다”며 “단속은 강하지만 처벌은 약하다”고 꼬집었죠. 한 일본 관광객은 후지TV 인터뷰에서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놀랐다”며 “운전이 거칠고 보행자 신호를 지키지 않는 차들이 많아 조심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의 자매로 추정되는 여성의 글도 주목을 받았는데요.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레드에 “한국에서 어머니와 언니가 음주운전 차량 신호 위반에 휘말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언니의 상태는 뉴스에서는 위중하다고만 보도됐지만 얼굴 뼈와 갈비뼈 등 여러 곳이 골절됐고 폐에 약 10㎝의 큰 상처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한국에서 음주) 운전자는 작은 처벌에 불과하다는데, 한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강력하게 처벌할 수가 없는 거냐”고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정말 뼈아픈 일침이었죠.

한국, 법은 세지만 실형보다 집행유예 많다

한국의 단속 기준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엄격한 편인데요. 도로교통법상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이면 음주운전으로 봅니다. 맥주 한 캔, 소주 한 잔만으로도 적발될 수 있는 수치죠. 그러나 문제는 단속 이후입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보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음주치사사건 재판 판결문을 분석한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5년간(2018~2023년)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의 61%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경찰청 통계에서도 재범률은 줄지 않았는데요. 최근 5년간 음주운전 재범률은 2020년 45.4%, 2021년 44.5%, 2022년 42.2%, 2023년 42.3%로 평균 약 43%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즉,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 10명 중 4명은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는 뜻이죠. 면허 취소 후 재취득까지 1~2년이면 가능해 “술 한 잔쯤이야”라는 인식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셈입니다.



윤창호법 6년, 형은 세졌지만 효과는?

우리나라가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혈중알코올농도 0.03%로 강화한 것은 2019년 이른바 ‘윤창호법’이 시행되면서죠. 효과는 있었을까요? 윤창호법 시행 이후 실제 법원 판결문 1만2000건을 분석한 연구(형사정책연구원 ‘판결문 데이터를 통해 본 음주운전 처벌규정 변경이 불러온 변화(2023)’)를 살펴보면 결과는 냉정했습니다.

법정형은 강화됐지만 재범 억제 효과는 거의 없었는데요. 개정 직후 실형 선고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지만 2년 만에 다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초범과 재범 간 형량 차이도 줄었죠. 연구진은 잦은 법 개정과 위헌 결정으로 인한 양형 혼선, 생계형 운전자 감형 관행, 실형 선고의 불일관성을 원인으로 꼽았는데요. “법정형의 높낮이보다 처벌의 확실성이 중요하다”며 “실형 선고와 면허 영구취소, 재활교육 이수 같은 후속 제재가 체계적으로 작동할 때만 재범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윤창호법 시행 5년이 지났지만 현실의 법정은 여전히 ‘법은 강화됐으나 처벌은 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거죠.

강력한 법과 더 강력한 사회적 낙인

일본의 형벌 자체가 한국보다 높은 것은 아닙니다.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최고 징역 20년, 부상사고는 15년 이하 징역인데요. 벌금 상한은 100만 엔(약 900만 원)으로 한국보다 낮죠. 그렇지만 국제 교통안전 연구에 따르면 2002년 개정된 일본의 음주운전 법령 이후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약 26.7% 감소했는데요. 일본 역학회지 자료를 살펴봐도 2000년 1276건에서 2010년 287건으로 약 78% 줄었죠. 그만큼 법에 따른 처벌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적인 낙인도 한몫하죠. 일본 경찰은 음주운전 사망사고 피의자의 이름, 나이, 직업이 포함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실명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NHK와 요미우리신문 등 주요 언론은 ‘용의자(容疑者)’라는 단어가 붙으면 신원 공개도 다소 자유롭습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존재하지 않는 일본에서 실명 공개는 공공안전의 영역으로 인식되죠.


(연합뉴스)


해고·퇴직·면허취소…법보다 사회가 먼저 움직인다

기업과 공공기관의 대응도 단호한데요. 일본 대부분의 기관은 음주운전을 비위행위로 간주해 형사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면직 또는 퇴직 조처가 내려지는 경우가 많죠. 공무원의 경우 인사위원회 결정으로 형사처벌 전이라도 퇴직이 가능합니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면허는 즉시 취소되고 재취득까지 최소 2년, 중대사고는 10년이 걸리는데요. 술을 제공하거나 운전을 권유한 사람, 차량을 빌려준 사람, 동승자까지도 최대 징역 3년 또는 벌금 50만 엔 처벌 대상입니다. 한국도 2019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음주운전 방조죄를 신설해 운전이 곤란한 상태임을 알면서 운전을 허락하거나 차량을 제공한 경우 동일한 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입증이 어려워 실제 처벌은 드문데요. 법조문은 존재해도 사회적 실행력은 떨어지는 거죠.


▲서울 도심에서 일본인 관광객 모녀를 들이받아 이들 중 어머니인 50대 여성을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 서모씨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속되는 음주운전 참변

5월 인천 남동구에서는 면허정지 상태의 20대가 혈중알코올농도 0.136%로 벤츠를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SUV를 들이받았습니다.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마중 가던 60대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숨졌죠. 가해자는 시속 135㎞로 역주행하다 사고를 냈고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검찰은 형이 가볍다며 항소했습니다.

지난달 추석 연휴, 경기 양주시 옥정동에서는 혈중알코올농도 0.2%를 넘는 만취 운전자가 인도로 돌진해 30대 남성 B 씨를 치었는데요. 최근 결혼해 아내 뱃속에 쌍둥이가 있는 예비 아빠였죠. B 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운전자의 진술에 유족은 강력한 처벌을 호소했죠.

이제는 일본 언론까지 꼬집은 한국의 음주운전 처벌. 더는 초범과 심신미약 등에 가려져 유족의 고통이 등한시돼서는 안 되겠죠. 처벌의 목적은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재범을 막는 억제력인데요. 그 억제력이 작동하지 않는 한 음주운전은 여전히 ‘습관적 범죄’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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