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의 전쟁, 결코 지지 않겠다”…핀셋 규제의 역설 [정권별 부동산, 결정적 장면⑧]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초기 기업인들과 함께한 공식 간담회에서 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향해 “부동산 가격 잡아주면 제가 피자 한 판씩 쏘겠다”고 말했다. 구본준 LG 부회장(현 LX홀딩스 대표)이 직원들에게 자주 피자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농담 섞인 발언이었지만,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도 부동산 문제를 언급할 정도로 뼈가 있는 말이었다.

이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혼란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줄줄이 내놨다. 예고대로 굵직한 대책 발표가 이어졌고 규제의 강도는 어느 정부보다 셌다. 다만 특정 지역과 계층을 겨냥한 핀셋 규제는 부작용을 남겼다. 과열 지역을 조이면 수요가 비규제 지역으로 계속해서 번졌고, 규제가 언제 강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며 주요 지역의 집값은 계속해서 뛰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은 부동산 과열이 본격화한 해였고, 당시 집값 안정화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출범 첫해 정부는 6·19 대책을 통해 조정대상지역을 추가 지정하고, 서울 전역 분양권 전매금지에 나섰다. 이어 8·2 대책에선 서울 대부분 지역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로 묶었고 한 달 만에 9·5 대책을 통해 성남 분당과 대구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했다. 이듬해인 2018년에는 6월 종합부동산세 개편안도 내놨지만 집값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강력한 수요 억제책인 9·13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이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3.2%까지 올리는 강력한 규제였다.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점차 상승폭이 둔화하다 11월 첫째주 하락세로 전환했고, 2019년 6월까지 7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 상승세 전환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더 강력하게 시장을 조였다. 11월 6일에는 강남 등 주요 지역의 27개 동이 분양가상한제 지역으로 묶였고 이어 12·16 대책을 통해 15억 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금지, 9억 원 초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20%로 하향했다.

강력한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던 문 대통령은 임기 중반인 2020년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강한 뜻을 밝혔다. 이어 같은 달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보다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규제로 인해 집값은 단기적으로 얼어붙는 듯 보였으나, 길어야 1년 정도였을 뿐 결과적으로 약발이 먹히진 않았다. 오히려 강한 규제에 주택 시장 불안이 커지고,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문 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문재인 정부였지만, 집값 안정화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정권 초기 3년 연평균 7.99% 오르던 아파트 가격은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20.48%, 19.59% 급등했다. 규제로 인한 효과는 보지 못했고, 오히려 임기 말 대외 환경으로 집값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에는 글로벌 고금리 환경이 조성되며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고, 그해 4.77% 하락한 이후 2023년에도 3.39% 떨어졌다.

본지 자문위원인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는 “임대차법 개정을 통한 계약갱신청구권 등 현재까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정책도 있지만, 수요를 너무 강하게 억누르면서 여러 부작용이 많았던 정권”이라며 “수요 억제에만 몰두해 공급 정책이 뒤따라주지 않은 점도 아쉽다”고 평가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