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모든 게 멈춘 것 같지만, 사실 그때부터 진짜 계산이 시작된다. 남은 감정, 잃은 시간, 얻은 깨달음. 따지고 보면 사랑은 감정의 교환이자, 관계라는 시장에서 일어나는 가장 복잡하고 격렬한 거래다.
한국 작가 공지영과 일본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가 각각 여자와 남자의 시선에서 하나의 로맨스를 풀어낸 한일 합작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운명적인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그린 이야기다.

20대 초반, 일본 유학을 온 한국인 여성 '홍'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살아가는 일본인 청년 '준고'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공유하고 지지하며, 서툴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일과 생활에 지친 준고는 점점 홍을 배려할 여유를 잃어갔고, 타지에서 외로움을 견디던 홍은 점차 관계의 균열을 느낀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이 쌓인 끝에, 결국 홍은 준고의 곁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후 7년이 흘렀다. 소설가의 꿈을 이루어 '사사에 히카리'라는 필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준고는 한국 출판을 위해 방한한다. 홍은 출판사 대표인 아버지의 부탁으로, ‘사사에 히카리’의 통역을 돕기 위해 공항으로 마중 나가게 된다. 운명처럼 다시 마주한 두 사람. 세월이 흘러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그들이 다시 사랑 앞에 서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소설 속 홍과 준고의 사랑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듯, 현대의 연애는 감정뿐 아니라 '경제'라는 잣대와 떼어놓을 수 없다. 사랑이 식는 이유는 감정보다 생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비, 선물, 결혼 준비 같은 문제 앞에서 관계는 시험대에 오른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30대 남성의 연애 갈등 1위는 ‘경제관’이었다. 연인간 월평균 데이트 비용은 약 35만 원, 연인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은 고가 전자기기가 상위를 차지했다. 사랑이 감정의 문제를 넘어 경제적 선택의 영역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이별 이후의 공백 속에서도 또 다른 ‘축적’을 이야기한다. 잃은 시간은 배움이 되고, 실패한 관계는 다음 사랑의 자본이 된다. 사랑은 결국 무형의 자산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홍과 준고가 7년의 시간을 돌아 깨달았듯, 사랑은 손익을 따지는 거래가 아니라 살아가며 배우는 가장 인간적인 투자다.
사랑은 늘 손해 보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회복력과 성장의 이율이 숨어 있다. 사랑할 때의 기쁨과 상처, 그 모든 경험이 결국 삶의 밑천이 된다. 사람을 믿는 법, 떠나는 법,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사랑의 순환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통해 관계의 기술을 배우고, 감정의 균형을 찾아가며, 조금씩 더 단단한 인간으로 자라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