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성공한 VIG…성장 원동력은 '수평적인 분위기와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 [PE의 젊은 피②]

VIG파트너스 강기정·김규명·배종현·황홍균 상무 인터뷰
70년대생으로 구성된 파트너들…"신구(新舊) 문화 조화"
"해외 진출·볼트온 등 기업가치 끌어올릴 수 있는 PE"
이스타항공·프리드라이프 등 기업가치 증대 성공 사례 다수

[편집자주] 2025년은 사모펀드(PE)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키운 해였다. 홈플러스 사태를 비롯한 굵직한 이슈들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먹튀(먹고 튄다)’ 프레임이 시장 전반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PE의 역할은 단순히 단기 차익을 노리는 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업 구조조정과 성장 전략을 뒷받침하며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순기능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국내 PE 업계는 세대교체기를 맞고 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생이 주축으로 떠오르며 판을 새로 짜고 있다. 투자 철학과 스타일, 리스크 관리 방식도 달라지는 추세다. 본지의 [PE의 젊은 피] 기획에서는 업계 젊은 리더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투자 철학과 전략, 그리고 한국 자본시장에서 그려나가는 미래상을 들어봤다. ‘먹튀’라는 부정적 프레임 너머, 세대 교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풍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규명(왼쪽부터), 배종현, 강기정, 황홍균 VIG파트너스 상무가 13일 서울 중구 VIG파트너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 태동과 함께 등장한 VIG파트너스(이하 VIG)는 보고펀드를 모태로 설립된 '국내 1세대 PEF 운용사'다. 2005년 설립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시장의 굴곡을 모두 통과했다. 그만큼 숙련된 운용 노하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투자은행(IB) 업계에서 VIG는 국내 PEF 운용사 중 세대교체에 가장 성공한 곳으로 꼽힌다. 과거부터 회사를 이끌어 온 1세대 창업 멤버들은 고문 역할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현재 실질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파트너급 운용역들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으로 구성된 세대교체형 PE로 진화했다.

특히, VIG의 허리를 맡고 있는 상무급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생으로 다른 PE들과 비교해도 젊은 편이다. VIG의 강기정·김규명·배종현·황홍균 상무는 VIG의 기업문화에 대해 "책임과 자유가 공존하는 회사"라고 평가했다. 직급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상당한 의사결정 권한이 제공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기업문화에 공감하는 젊은 운용역들의 근속연수도 길다. 이투데이가 만난 상무 4명 중 2021년 설립된 크레딧 부문에 몸을 담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근속연수가 10년을 넘었거나 그에 가까이 됐다.

직원들의 긴 근속연수는 투자한 곳의 기업가치 상승과도 관계가 깊다. VIG는 투자 검토 단계부터 길게는 수년을 포트폴리오 회사에 쏟는다. 투자 후에도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수년간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근속연수가 긴 만큼 직원들은 각자 맡고 있는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그만큼 기업가치 상승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IB 출신 포진…"주니어 레벨부터 다양한 기회 부여 받아"

▲강기정 VIG파트너스 상무가 13일 서울 중구 VIG파트너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인터뷰에 응한 4명의 상무 모두 글로벌 IB 출신이었다. 강기정, 배종현 상무는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메릴린치) IB 부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각각 2014년, 2016년 VIG에 합류했다. 김규명 상무는 바클레이스 IB 부문 홍콩 사무소에서 일하다 2016년부터 VIG에 몸을 담고 있다.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에 2022년 합류한 황홍균 상무는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강 상무는 "IB에서 기업 가치평가 방법론과 함께 다양한 산업을 빠르게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며 "이 경험이 투자 판단의 기본기가 됐다"고 말했다. 배 상무와 황 상무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배 상무는 "IB에서는 주니어 레벨에서부터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국내외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조율하는 기회가 많았다"고 했다.

김 상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글로벌 플랫폼 안에서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성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고, 매크로(거시경제) 환경이나 산업 사이클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지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PE 업계에 발을 들인 이유는 모두가 같았다. 투자 이후 회사가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다는 이유에서 IB에서 PE로 길을 틀었다. 강기정 상무는 "IB에서 인수·합병(M&A) 및 기업공개(IPO) 자문을 하면서 대상 회사들의 기업가치 평가와 함께 중장기 운영 계획을 세우는 일을 했다"며 "하지만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커지던 차에 VIG에 합류할 기회가 생겨 PE에 몸을 담게 됐다"고 전했다.

"책임과 자유가 공존하는 VIG…주니어도 자유롭게 발언"

▲김규명 VIG파트너스 상무가 13일 서울 중구 VIG파트너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4명의 상무 모두 VIG에 합류한 이유 중에 자유로운 기업문화가 있었다. 강기정 상무는 "VIG는 매우 수평적인 조직으로, 책임과 자유가 공존하는 PE"라고 말했다. 직급과 무관하게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상당한 의사결정 권한이 제공된다. 그는 "주니어들도 신규 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내부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에는 딜 성사를 위해 파트너들도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상 회사 접촉을 도와주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VIG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20년간 사람에 투자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종현 상무도 "VIG의 핵심은 소통"이라고 했다. 배 상무는 "파트너부터 주니어까지 한 테이블에서 투자 및 포트폴리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며, 이를 통해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책임을 진다"며 "창립자였던 변양호 대표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김규명 상무는 "국내 운용사(GP) 중에서도 신구(新舊) 문화와 다양한 연령대가 가장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PEF 시장의 태동기부터 함께 성장해 온 회사로서, 여러 차례의 매크로 환경 변화와 산업 사이클을 직접 경험하며 쌓아온 깊은 내공과 최근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젊은 역동성이 균형 있게 공존한다"고 전했다.

2021년 설립된 VAC도 기업문화는 VIG와 유사하다. 총 인원이 5명으로 소수로 움직이는 만큼 각자에게 책임과 권환이 많이 부여되며, 투자 검토 과정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발언한다. 황홍균 상무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수록 올바른 투자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전했다. 특히 "VAC 부문을 총괄하는 한영환 파트너는 사모 크레딧 전략이 한국에 정착하기 오래 전부터 크레딧 투자자로 활동해온 전문가"라며 "덕분에 하우스 전체에 확실한 차별성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투자로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출해야…좋은 회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

▲배종현 VIG파트너스 상무가 13일 서울 중구 VIG파트너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통상 PEF 운용사들은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회수한 후 투자자(LP)들에게 높은 수익률로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다. 높은 수익률로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기업가치 상승이라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에는 전 직원이 참여하고, 실사(DD) 보고도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투자에 대한 공감대와 검증을 마친 건만 집행할 수 있다.

강 상무는 "투자 판단의 핵심은 정직과 신뢰"라고 말했다. 강 상무는 "GP는 타인의 자금을 운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딜을 검토하는데 있어 리스크와 기회 요인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정직이 누적돼야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서 "VIG는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대상이 거래 상대방과 회사 직원들까지로 넓다"고 말했다.

특히 배 상무는 PE가 투자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좋은 회사에만 투자한다면 예전처럼 좋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회사에 자본을 투입하여 재무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해소하거나, 산업 내 여러 회사를 통폐합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등 PE 투자로 인해 명확히 바뀌는 부분이 있어야 가치창출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스트항공 인수와 엑시트(투자금 회수) 과정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VIG가 인수하기 전 이스타항공은 재운항을 위해 새로운 자본 투입이 필요했다. VIG는 11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재운항을 위한 자본을 조달했고, 보유 네트워크를 활용해 리스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다. 이에 이스타항공은 현재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회사가 법정관리 과정 시 부득이하게 퇴직했던 직원의 복직 뿐만 아니라 신규 채용도 적극적으로 진행해 VIG 투자 이전 500명도 되지 않았던 임직원 수가 현재는 1300명으로 증가했다.

김 상무는 "투자 검토 과정에서 '가설을 세우되 검증이 안 되면 즉시 수정해야 한다(Strong opinions, loosely held)'라는 원칙을 지킨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유연함이 투자 성과를 만든다"며 "인수 이후에는 이해 관계자들의 인센티브를 일치시키는 게 중요하다. PE는 단순한 자본 제공자가 아니라, 경영진·임직원·오너를 조율하는 '조용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과 시장을 읽는 힘…변화를 해석하는 구조적 투자"

이들은 산업의 성장을 단기적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산업이 어떤 구조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어떤 변화가 가치 창출의 지점이 되는지를 살핀다. 강 상무는 "한국 산업의 경쟁력은 치열한 내수 시장에서 검증된 밸류체인에 있다"며 "K-콘텐츠, K-뷰티, K-푸드 등은 내수에서 다져진 경쟁력이 해외에서도 통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한국이 세계를 대표하는 분야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상무는 기업이 처한 성장 단계, 재무 구조, 시장 포지션에 따라 필요한 해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황 상무는 "상황 중심의 접근이 중요하다"며 "기업의 니즈와 투자자의 조건이 맞닿는 구조를 설계해야 진짜 의미 있는 투자가 된다"고 말했다. 배 상무는 고령화에 따른 시니어케어 산업을 차세대 성장 축으로 꼽고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고령화로 돌봄·요양·주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산업이라 자본 투입을 통해 산업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VIG는 이 같은 구조적 성장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볼트온(Bolt-on)' 투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에 연관 사업을 덧붙이는 전략으로, 성장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기업 가치를 안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단순한 규모 확장이 아니라, 밸류체인 내 공백을 메우는 구조적 접근이라는 게 VIG의 판단이다. 푸디스트와 비이에프가 대표적이다. 김 상무는 "푸디스트를 인수한 이후 제품 다각화, 물류 효율화, 브랜드 확장을 동시에 추진했고, 이후 관련 기업을 추가 인수하며 시너지를 높였다"고 말했다.

현재의 M&A 시장은 '매수자 시장(Buyer’s Market)'으로 규정했다. 고금리 장기화와 유동성 축소로 투자 자금이 줄어들면서 검증된 PE에 쏠림 현상이 심화했다. 자금력과 실행력을 모두 입증해야 경쟁이 가능한 환경이 형성됐다. 배 상무는 "코로나 시기의 매도자 중심의 시장(Seller's Market)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PE의 기본기와 판단력이 드러나는 시기"라며 "VIG는 이번에 모집한 5호펀드를 기반으로 장기 관점에서 선별 투자 기회를 엄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높은 책임감과 호기심은 필수…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

강 상무는 PE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호기심과 집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PE에서는 다양한 산업과 회사에 대한 분석을 하고, 투자 이후 다양한 신규 성장 전략을 추진하게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이슈의 본질이 무엇인 지를 끈질기게 고민하고 이를 기반으로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서 해당 이슈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어떠한 분야이든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도를 높여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PE는 무한책임사원(GP)으로 펀드를 운용하기 때문에 높은 책임감도 필수 요소라고 했다. 배종현 상무는 "PE는 펀드 운용에 있어서 무한하게 책임을 지게 되는데 그렇기에 PE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높은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 생각된다"며 "투자를 집행하고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다보면 다양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되는데 끝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다양한 방안을 통해 해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홍균 VIG파트너스 상무가 13일 서울 중구 VIG파트너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황 상무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별 기준을 갖고 정보를 소화해 해당 투자가 어떤 위험 요소를 지녔고, 위험 대비 어떤 수익이 기대되는지 단순한 언어로 정리할 수 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다양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큰 틀에서 기업이 처한 상황과 니즈가 무엇인 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면, 투자 해법을 보다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김 상무는 "PE 업의 본질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설득'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다"며 "단순히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 상대가 납득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윈윈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설득력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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