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 노벨상’ 물리학 거목 양전닝 조국서 영면⋯향년 103세

1957년 리정다오와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
‘양 밀스 이론’으로 입자물리학 표준 모델 기초 마련도
중국 귀환, 젊은 과학자 양성 헌신
“내 생애 가장 큰 업적은 중국인의 자존 회복”

▲중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인 양전닝 중국 칭화대 교수. (신화뉴시스)

중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인 양전닝 칭화대 교수 겸 중국과학원 원사가 18일 별세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이 보도했다. 향년 103세.

양전닝은 1957년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자 리정다오와 함께 ‘패리티 비보존 이론’을 수립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또 1954년 미국의 로버트 밀스와 함께 제창한 ‘양 밀스 이론’은 입자물리학 표준 모델의 기초를 마련한 현대 물리학의 초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자연의 물리법칙을 통합해 우주의 근본적 힘을 이해하게 한 이론’이라 평가되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맥스웰방정식 등과 함께 주요 기초 물리 이론으로 꼽힌다.

1922년 중국 동부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태어난 양전닝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서남연합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44년 칭화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48년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9년부터 프린스턴고등연구소에서 일했고, 1955년 교수가 됐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소장이던 시절 초청으로 17년 동안 근무하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리먼 다이슨 등 세계적 물리학자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 1966∼1999년엔 뉴욕주립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이론물리연구소(현 양전닝이론물리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다.

1986년엔 홍콩 중문대학 석좌교수를, 1997년과 1999년에는 모교인 칭화대 고등연구센터(현 고등연구원) 명예 주임과 교수가 됐다. 2003년 완전히 중국으로 돌아와 연구와 교육에 전념했다. 2004년 당시 82세였던 그는 1학년생 4개 반에 ‘일반물리학’을 직접 강의하기도 했다고 칭화대 물리학과의 주방펀 교수는 회고했다.

▲ 중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인 양전닝 교수가 2004년 9월 칭와대에서 학부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베이징/신화뉴시스)

어린 시절에도 수학자였던 부친 양커췬이 시카고대에서 공부한 칭화대 교수를 재직했던 인연으로 8년간 칭화대 캠퍼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칭화대는 이날 양전닝을 추모하기 위해 학교 공식 웹사이트의 색상을 회색조로 전환했다.

양은 미국 내 연구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196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지만, 그는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며 “죽음의 순간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은 아버지로 인해 후회했다”고 밝혔었다.

2015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중국 국적을 다시 취득했다. 그는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이고, 내게 훌륭한 연구 기회를 제공한 나라다. 나는 미국에 감사한다“라면서도 “내 혈관 속의 피는 아버지의 것이며, 그것은 중국 문화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출판된 자신의 저작 모음집 서문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헌은 중국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심리를 바꾸는 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 회고했다.

양은 다른 중국계 과학자들에게도 중국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세계적 컴퓨터 과학자이자 ‘컴퓨터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인 야오치즈로, 2004년 칭화대 고등연구소 교수로 부임했다. 야오는 중국의 주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제자로 둔 인물로, 2015년 양과 마찬가지로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고 학술지 사이언스가 전했다.

다만 이 같은 ‘귀국 권유’ 움직임은 미국 내에서 ‘중국의 첨단기술 탈취’ 우려를 낳았다. 미국 정부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차이나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켜 중국 및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이 산업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조사 및 기소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차별 조장 비판을 받아 2022년에 공식 종료됐다.

양은 미·중 간 과학협력 긴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은 없지만 이미 70여 년 전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나는 여러 의미에서 중국과 서양 두 문화의 산물이다. 조화 속에서도, 때로는 갈등 속에서도”라며 그 긴장과 이중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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