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파산으로 환매 중단⋯금감원 권고로 원금 전액 반환
법원 "상품제안서 검토 소홀"⋯JB자산운용 90% 배상 책임

법원이 4800억 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독일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해 자산운용사에 책임을 물어 현대차증권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차증권이 판매한 124억 원 중 112억 원을 배상액으로 인정했는데, 현재까지 독일 헤리티지 펀드 사태에서 나온 법원 결정 중 최대 규모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주진암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현대차증권이 JB자산운용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 내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매입해 주거용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에 브릿지론 형태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독일 현지 시행사 저먼프로퍼티그룹(GPG)이 개발 사업을 맡았고, 싱가포르의 반자란자산운용이 대출 펀드를 조성했다.
현대차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국내 금융사 6곳은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을 발행해 2017년 4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4835억 원 치를 팔았다. 이 가운데 현대차증권이 판매한 펀드는 124억 7000만 원이었다.
그러다 사업 시행사가 파산하면서 2019년 6월부터 환매가 중단돼 투자금 대부분이 회수되지 못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2019년 10월부터 환매 중단 사태에 관한 조사를 벌인 뒤, 2022년 11월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어 판매사들에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금감원 분조위는 "펀드 상품제안서 내용이 거짓이고, 투자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는 장치도 없었다"며 알았다면 애초에 계약하지 않았을 만큼 중요한 사항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후 6곳의 펀드판매사는 투자자들에게 '전액 반환'을 결정했다.

법원은 분조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JB자산운용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사건 상품제안서는 '시행사의 1년 내 부도 확률은 0.57%로 매우 우수한 재무건전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기재돼 있다"며 "피고가 검토한 원본 보고서를 보면 시행사의 최대 신용 한도는 4만 유로(약 5300만 원)에 불과함을 알 수 있었으나 이런 내용은 상품제안서에 기재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2년간 5%대의 수수료가 부과된다고 기재돼 있으나 시행사는 이 사건 대주 측에 총대출 금액의 14%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반자란자산운용은 운용보수 별도 명목으로 4.0~4.8%를 수취했다"며 "금감원 조사 결과 실제 수수료는 이면 수수료를 포함해 약 23~24%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상품제안서는 펀드 판매에 관해 가장 핵심이 되는 문서로, 증권사가 위탁판매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가장 근간이 되는 자료"라며 "피고는 다른 자산운용사들이 전달해준 기존 상품제안서들을 받아 검토를 소홀히 한 채 상품제안서를 만들어 교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손해배상 책임 범위에 대해서는 이 사건 시행사 대표이사가 사기 등 혐의로 독일 검찰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점, 추후 펀드의 투자원리금 상환이 거의 불가능한 점 등을 고려해 124억7000만 원 전액이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다만 현대차증권도 원본 보고서를 받아 시행사의 최대 신용 한도가 4만 유로에 불과함을 알 수 있었던 점, 환매 중단의 주요 원인이 시행사에 있는 점 등을 참작해 JB자산운용의 손해배상 책임을 90%로 산정했다.
JB자산운용이 이달 초 항소하면서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가게 됐다. 1심이 금융상품 설계 단계에서 자산운용사의 책임을 명확히 한 만큼 해당 사태와 관련된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박세길 법무법인(유한) 세종 변호사는 “독일 헤리티지 펀드 관련하여 금감원 분조위 결정에 따라 투자금을 전액 반환한 사건에서 펀드 판매사와 자산운용사 내지 DLS 발행사 사이에 내려진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펀드 사건에서 법원이 자산운용사의 책임을 90%까지 인정한 건 자산운용사의 책임을 매우 엄중하게 물은 것이라는 점에서 선례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며 “다른 기관 투자자들 사이 소송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