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감독 권한은 축소된다. 건전성 감독 기능만 두고 분리 신설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에 소비자보호 감독권을 넘긴다. 금감원과 금소원은 각각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명분은 익숙하다. 정책과 감독을 분리해 이해상충을 줄이고 견제와 균형을 복원시키겠다고 한다. 반복된 금융 사고, 사건 등 취약한 소비자보호 강화도 내세웠다. 금융시장 선진화를 서둘러야 할 때 ‘엑셀’(산업육성 정책)과 ‘브레이크’(감독)가 같이 있는 구조는 한계가 있다는 논리도 따라붙는다.
금융당국은 난리가 났다. 금융위 내부에선 이재명 대통령의 ‘열일(열심히 일함)’ 칭찬에 뒤통수 맞았다는 탄식이 나온다. ‘어차피 없어질 조직’이라는 체념과 보신주의가 얽히고설켜 무기력감만 커지고 있다.
금감원 직원 수백 명은 1층 로비에서 이찬진 원장 출근길에 맞춰 ‘검은 옷’ 시위를 지난주 내내 했다. 장례식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근조기’도 등장했다. 직원들은 그 앞에 이름과 직함이 적힌 명패를 줄지어 내려놨다. 초상집이 따로 없다.
금감원은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고강도 현장 검사와 신속한 조치에서 비롯됐다. 금융당국이 네 갈래로 나뉘면 책임 소재는 흐려지고 속도는 떨어질 게 분명하다. 저승사자가 사라진 틈을 노리고 금융시장을 갉아먹는 악령들이 활개를 칠 수 있다. 금융회사들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 시점에서 고민해 봐야 할 것은 누구를 위한 금융당국 조직개편인가이다. 무엇보다 금감원·금소원 공공기관 지정 추진에 의문부호가 찍힌다.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의 민간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매년 정부의 경영 평가를 받게 된다. 예산·인사 등도 지침에 따라야 한다. 금융감독의 전문성과 독립성보다 정치적 통제가 우선되는 개편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금감원이 2007년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2009년 해제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 업무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조직 개편이 완료될 때까지 정책 공백이 불가피해 보인다. 스테이블코인, 인공지능(AI) 등 금융시장 환경 변화 대응이 급한 금융사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문제는 기약이 없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정부 조직 개편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지만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 조직개편을 위해서는 바꿔야 할 법안만 금융위원회 설치법, 은행법 등 수십 개이고 수정 법조문도 수천 개에 달한다고 한다. 야당인 국민의힘과 협의도 안 된 상태다. 내년 1월까지 법제도를 정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여당이 조직개편을 통해 금융당국의 효율성을 높이겠다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갈 게 훤하다. 기존 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혼란은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 생산적 금융 등 첨단산업의 마중물이 될 금융의 역할과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단순한 ‘간판 바꿔 달기’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정부·여당은 이제부터라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적어도 ‘소비자보호의 외피를 두른 권력 나눠먹기’라는 비판은 듣지 말아야지 않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