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기관 개혁 예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거와 같은 물리적ㆍ화학적 통합 방식 대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인력과 규모를 줄이는 '디지털식 통합'을 주문했다. 다만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이룰수는 없는 만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창기 전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혁 과정에서 AI와 디지털 전환이 통폐합의 실질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디지털 기술로의 전환이 인력을 줄이고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자동화와 AI 시스템을 도입하면 불필요한 인력을 줄이고 조직을 자연스럽게 슬림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리적 통합이 조직을 비대화시킬 위험이 있다면 AI는 조직을 간결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줄어든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더 큰 과제”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무리한 구조조정으로만 가면 노조 저항이 불가피하다. 외주·위탁하던 사업을 내부로 흡수해 남는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례를 들며 “출범 10년이 넘었지만, 내부 결합은 미완”이라며 “한국전력 자회사 통합도 억지로 사람과 업무를 섞으면 갈등만 심화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독립성, 자율권, 권한 유임 등을 통해서 커다란 의미의 통합이나 화합을 도모해야한다”며 “무리하게 화학적으로 사람이나 업무를 섞으면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 독립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점차 화학적 결합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개혁 이후 관리 체계도 중시했다. 이 교수는 “통합 관리위원회가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된다. 상설 기구를 두고 통합 성과와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평가·보완해야 한다”며 “지속적 모니터링 체계가 있어야 방만 경영을 막고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승호 상명대 명예교수는 개혁의 전제 조건을 “정부가 기능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꼽았다. 그는 “복지·산업·안전망 등 모든 기능이 중요하지만, 정부가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다”며 “이번 개혁에서 무엇을 우선시할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그간 노조의 반발과 낙하산 인사 등으로 용두사미로 끝났던 역대 공공기관 문제에 대해 “정치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저항을 극복하려면 그만큼 손실을 봐야 하는 게 많다”고 강조 했다. 다만 AI를 통한 디지털 전환을 개혁의 주요 동력으로 삼은 것과 관련해선 “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수단이지만, 일자리는 개인에게 절대적 가치다. 효율성만 앞세워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철학적 문제가 남아 있다”며 “사회적 대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승준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개혁’ 동아시아연구원(EAI) 연구보고서에서 “공공기관 방만경영 개선과 개혁의 핵심 지표들이라 할 수 있는 기관 수, 인원, 예산, 부채가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증가했다”며 “그동안 역대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개혁이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는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기업 민영화, 성과연봉제, 구조조정, 통폐합 등의 공공기관 개혁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숫자, 인원, 부채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역대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며 “차기 정부 공공기관 개혁은 방만경영의 핵심 지표들을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