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통업 정산주기 단축’ 법제화…학계 “납품업체·소비자에 되레 피해”[현장]

26일 한국유통법학회ㆍ한국유통학회 공동 특별세미나 개최

▲26일 오후 서강대학교 마테오관에서 열린 한국유통법학회와 한국유통학회 공동 특별세미나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심재한 영남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금지급기일 단축 쟁점'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배근미 기자 @athena3507)

지난해 티메프(티몬ㆍ위메프)발 1조 원대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여가 지난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유통업권 첫 번째 과제로 정산주기 단축을 골자로 한 법 개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학계와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규제가 중소납품업체와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하고 나섰다.

심재한 영남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한국유통학회와 유통법학회 공동 주최로 진행된 특별세미나(대규모유통업법상 대금지급 기일 단축의 쟁점과 과제)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티메프 사태의 근본적 문제는 정산기간 문제가 아니라 회사 경영자의 판단미스"라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을 통한 정산기간 단축 시 온라인 유통사업자들의 자금 유동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유통사업자들의 도산은 연쇄적인 납품업체들의 손해와 소비자들의 피해로 직결된다"면서 "또한 유통업체들이 직매입 규모를 축소해 제조업체들의 생산량도 줄어들 여지가 크다. 이 경우 대형 납품업체보다 중소 납품업체들에게 더 큰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유통기업에만 적용되는 대규모유통업법 특성 상 법 개정 시엔 납품업자들의 대형 유통업자 선호현상에 따른 양극화 현상 심화에 따른 부작용도 점쳐졌다. 심 교수는 "납품업자들은 대금지급기일이 짧은 대형 유통업체와의 거래를 선호할 것이고 중소사업자 혹은 신규 사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오히려 해외 대형업체가 국내 시장으로 진입할 기회가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금기일 축소는 돌고돌아 소비자들에게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대금 정산 이후 하자가 발생할 경우 청약 철회 등에 따른 피해 보장 방식이 모호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일례로 대금정산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현대 30일 수준인 대형 홈쇼핑의 소비자 반품 기한이 15일 내외로 축소될 여지가 크다.

심 교수는 "제품과 계약 내용과 다를 경우 그 사실을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약 철회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면서 "한 판매자가 정산주기 축소로 10~20일 내에 돈을 정산받고 사라졌는데 판매 제품이 정품이 아닌 가짜상품인 경우에는 소비자는 그 피해를 어디서 구제받을 것이냐의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 소규모 유통업자들을 상당히 큰 어려움에 빠트릴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장명균 호서대학교 교수가 26일 한국유통법학회와 한국유통학회 공동 특별세미나에서 유통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거래구조와 상생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배근미 기자 @athena3507)

두 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장명균 호서대학교 교수 역시 지난해 티메프 사태에 대해 '정산지급 기일' 이슈가 아닌 취약한 '거버넌스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티메프와 홈플러스 사태의 공통점은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악화됐고 그것이 정산 지연과 공급망 교란을 야기시켰다는 점"이라며 "이는 결국 영업에 차질을 불러왔고 신뢰도를 떨어뜨렸는데 우리는 왜 정산주기 단축 논의를 하고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럼면서 "사실 이번 이슈를 통해 유통사들이 왜 내부통제에 실패를 했는지, 이를 견고히 확립하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결국 지급의 신뢰성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사는 엄연히 다른 만큼 정산주기의 획일적인 산정은 무리가 있다"며 "업태별 상황을 고려한 차별적 적용과 거래 당사자간 협의 및 협의체 마련, 제도 시행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단계별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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