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브레이크가 멋?"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픽시 자전거'가 논란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픽시 자전거는 고정기어 자전거(fixed-gear bicycle)를 뜻하는데요. 변속기나 브레이크 없이 하나의 기어만 사용합니다. 흔히 영어 약칭인 픽시(fixie)로 지칭합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이유는 안전 때문입니다. 픽시 자전거는 본래 실내경기용 자전거인데요. 경기 중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잡으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속도가 생명인 선수들에겐 불필요한 옵션으로 여겨지기도 했죠.
그러나 이는 모두 장애물이 없는 전용 트랙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수십 대의 차와 행인, 각종 시설물이 놓여 있는 일상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죠. 최근 픽시 자전거 운전자가 촉발한 안전사고가 늘어나면서 경고음도 커졌는데요. 픽시 자전거 열풍에 브레이크가 걸릴 소식도 전해져 이목을 끌었습니다.

픽시 자전거의 가장 큰 매력은 속도일 겁니다. 실내 경주용으로 쓰여온 만큼 선수의 경우 시속 70㎞까지, 일반인도 내리막길에서는 60㎞까지 속도를 내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반 자전거보다 적은 부품이 들어가 무게도 가볍고 깔끔한 디자인을 자랑하죠. 한 대당 100만 원을 넘나드는 가격으로 신종 '등골 브레이커(등골을 휘게 함)' 아이템으로도 언급됩니다.
픽시 자전거의 구조를 살펴보면 페달과 뒷바퀴가 고정돼 있다는 게 특징인데요. 이에 멈추려면 역방향으로 페달을 밟거나 발로 땅을 짚어야 합니다. 뒷바퀴를 좌우로 흔들며 마찰을 일으켜 속도를 줄이는 스키딩(skidding)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죠.
청소년 사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유명 웹툰의 인기에 힘입어 수년 전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된 유행은 숏폼 영상을 통해 더욱 불타올랐는데요.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에는 픽시 묘기 영상이 수만~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키딩을 비롯해 픽시 자전거로 선보일 수 있는 각종 포즈들이 일종의 '묘기'처럼 여겨진 겁니다. 픽시 자전거를 잘 타는 친구는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삼삼오오 올림픽공원, 한강 둔치 등에 모여 각종 스킬을 연마(?)하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픽시 자전거의 멋은 사실 맹점이기도 합니다. 브레이크 없이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돌발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건데요.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 자전거의 제동거리는 일반 자전거보다 5~10배 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전거 전문 유튜버 '0.1통 라이더'가 최근 공개한 '픽시 자전거 제동력 테스트' 영상에 따르면 숙련된 전문가조차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를 곧바로 정지시키는 건 불가능했는데요. 시속 30㎞로 달리던 브레이크가 있는 로드 자전거는 제동 거리 3.59m를 기록했지만 픽시 자전거들은 수 배는 긴 제동 거리를 나타냈는데요. 과거 '생활의 달인'에 출연한 '픽시 전설' 인플루언서도 7.8m를 기록했습니다. 중학생 대표는 20m 넘게 제동하지 못하고 박스를 그대로 들이받았는데요. 이를 지켜보던 '0.1톤 라이더'는 "이게 실전이었으면 전치 6주 넘게 나온다. 노 브레이크가 이렇게 위험하다"고 강조했죠.
문제는 이런 픽시 자전거들이 도로로, 또 인도로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엔 사망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지난달 12일 서울 관악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한 중학생이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 멈추지 못해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혀 숨졌죠.
자전거 사고도 증가 추세인데요. 경찰청 교통안전과에 따르면 지난해 자전거 교통사고는 5571건으로 전년과 비교해 8.3% 증가했습니다. 사망자도 75명으로 지난해보다 19.0% 늘었고 부상자도 6085명으로 8.6% 증가했습니다. 특히 18세 미만 사고 비율은 전체의 26.2%(1461건)를 차지하면서 사고 4건 중 1건 이상이 청소년에게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경찰도 픽시 자전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경찰청은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픽시 자전거 도로 주행을 안전운전 의무 위반으로 계도·단속하겠다"며 현행 도로교통법을 적극 적용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우선 경찰은 법률 검토를 거쳐 픽시 자전거가 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경우 제동장치를 정확하게 조작·운전해야 한다는 도로교통법 규정을 적용할 수 있죠. 그간 픽시 자전거는 자동차나 원동기에 속하지 않고, 브레이크가 없어 자전거로도 분류되지 않아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보행자에게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운전 금지 조항이 있지만, 픽시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니라 단속에도 혼선이 있었죠.
이에 경찰은 '모든 차의 운전자가 제동장치를 정확히 조작·운전하도록 규정한다'는 도로교통법 제48조를 제1항을 근거로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 자전거의 주행을 안전운전 의무 위반으로 보고 계도·단속한다는 방침입니다.
개학 기간을 맞이해선 중·고교 등하굣길 주변에 교통경찰관 등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픽시 자전거 계도·단속을 할 계획인데요. 통상 안전운전 의무 위반은 즉결심판 청구 대상이지만, 픽시 자전거를 탄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경우에는 부모에게 통보하고 경고 조치를 합니다.
수차례 경고에도 부모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방임행위로 보호자도 처벌할 수 있다는 설명이죠.
또 주말과 공휴일에는 자전거도로를 중심으로 동호회 활동을 하며 픽시 자전거를 타는 행위도 집중 단속할 방침입니다.
19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를 타던 운전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확산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원글 작성자는 "픽시 단속 진짜 한다. 노 브레이크를 탄 건 잘못했지만 브레이크 비용도 안 주고 바로 경찰 차에 픽시 자전거와 함께 태워서 가더라"며 "브레이크가 의무여도 비용 문제로 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해당 글에는 경찰이 픽시 자전거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첨부됐죠.
글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네티즌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브레이크는 본인이 뗀 것 아니냐.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 달라는 소리냐", "일반 도로에서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려던 걸 반성해라", "본인 안전은 상관없지만 운 안 좋으면 내가 사고에 휘말릴 수 있는 거 아니냐" 등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난폭 운전을 일삼거나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고, 경찰을 조롱하는 일부 자전거 운전자들의 행태까지 전해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한블리)'에는 버스에서 내리던 승객이 픽시 운전자와 충돌해 다발성 찰과상, 타박상, 뇌진탕 진단을 받은 사고, 한 발로만 픽시 자전거를 타던 한 청소년이 자동차 앞에서 차선을 변경하다 충돌한 사건 등 픽시 자전거 관련 사고만 모아 놓은 특집이 전파를 타기도 했습니다.
현직 경륜 선수조차 픽시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단언합니다. 중학생 때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15년째 현직 선수로 활동 중인 김기훈 씨는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들도 픽시 자전거를 타고 도로나 일반 보도를 달리는 경우는 없다. (일반 자전거와) 제동력이 너무 차이 난다. 일반인들이 타기엔 제동 거리가 너무 길어지고 선수들이 타더라도 도로에서 위협을 받을 정도로 제동력이 좋지 않다"며 "만약 내리막길 같은 탄력이나 시속이 많이 가속이 많이 된 상황에서 선수들이 마음잡고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해도 제어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시속 10㎞로 주행을 했을 때 일반 자전거와 픽시 자전거는 제동 거리가 3~5배 정도 차이 난다. 20~30㎞ 수준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10배 이상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며 "픽시 자전거는 실내경기용으로 만들어진 자전거라 너무 위험하다. 만약 픽시를 타고 싶다면 경기장에서 사용하는 걸 권장한다. 도로에서는 브레이크가 달린 자전거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픽시 자전거와 느낌이 비슷한 로드 자전거도 있고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는 MTB, 일반 자전거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죠.
온라인에서도 "목숨보다 멋이 먼저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확산하는 만큼, 픽시 자전거 열풍이 계속해서 이어질지는 미지수인데요. 픽시 자전거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여론까지 맞물리면서 이번 경찰의 단속 강화는 단순히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자전거 안전 문화 정착의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