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취소에 불안했던 한미 관세 협상...'마스가' 카드로 극적 타결 [관세 협상 타결]

트럼프, 지난 4월 李대통령에게 '상호관세 25% 부과' 서한 보내
협상 초반, 美측 긴급한 이유로 고위급 '2+2 협의' 돌연 취소 통보
협상 키 쥔 러트닉 美 상무장관 일정 따라다니며 '출장 협상' 벌여
통상당국은 물론 한화, 삼성, 현대차 등 민관 모두 관세 협상에 총력
정부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 플랜'이 가장 크게 기여"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에서 한미 무역협상 타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 협상이 4개월 만에 극적 타결됐다. 협상 초반에는 고위급 '2+2 통상협의' 일정이 돌연 취소되면서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 고위급들이 '스코틀랜드 출장 협상'에 나서고 재계 총수들이 가세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면서 타결에 성공했다.

대통령 선거 등으로 미뤄지던 양국의 관세 협상에 출발 신호가 쏘아 올려진 것은 7월 초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8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을 수신자로 지정해 보낸 무역 관련 서한을 자신의 SNS 계정에 공개했다. 서한에는 "우리의 관계는 유감스럽게도 상호주의와 거리가 멀었다"면서 "2025년 8월 1일부터 우리는 미국으로 보낸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이 관세는 모든 품목별 관세와 별도"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 관세는 당신 나라와 우리의 관계에 따라서 위로든 아래로든 조정될 수 있다. 당신은 결코 미국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여 협상의 여지를 강조했다.

서한에 나온 '관세율 25%'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한국에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상호관세 25%와 같다. 애초 7월 9일부터 적용 예정이었던 상호관세 관세율은 유지한 채 부과 시점만 뒤로 미루겠다는 의미다. 이는 그동안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성실하게 임했다고 판단해 상호관세율 25%를 관철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양국 간 합의를 위한 협상 시간을 더 확보하려는 조치로 풀이됐다.

이후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전방위 총력전을 펼쳤지만 쉽지 않았다. 한미 양국은 25일 워싱턴 D.C.에서 재무·통상 수장 간 '2+2 통상협의'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회의 하루 전 미국 측이 돌연 취소 통보를 하면서 협상 초반부터 난기류가 형성됐다. 일방적인 취소 통보에 인천공항에서 출국 대기 중이었던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미국 측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의 '긴급한 일정'을 취소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 외에는 정확한 이유나 설명을 내놓지 않아 협상 자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 측이 제시할 것으로 알려진 쌀, 소고기 등 '농산물 레드라인'과 '대미 투자 1000억 달러+α(알파)' 등 협상안이 미국 측 눈높이에 맞지 않아 협상을 취소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각종 우려와 추측 속에서도 정부는 차분히 미국과의 협상을 이어갔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달 22일 가장 먼저 미국 현지에 투입됐다. 여 본부장은 취임 직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워싱턴 D.C.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면담하면서 관세 협상에 힘썼다. 여 본부장 방미 다음 날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을 찾아 러트닉 장관과 그리어 대표 등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김 장관의 방미는 취임 이틀 만에 이뤄졌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을 주축으로 한 한국 협상단은 이달 24일 워싱턴 D.C. 미 상무부 청사에서 회담했다. 이날의 첫 만남이 이번 협상의 사실상 '터닝 포인트'였다. 당시 한국 협상 대표단은 러트닉 장관에게 이른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러트닉 장관은 '마스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튿날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을 뉴욕 자택으로 초대해 협의를 이어가자고 제의했고, 두 사람은 당초 귀국하려던 일정을 취소하고 밤 늦게까지 조선 협력 방안을 집중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스코틀랜드 방문에 동행한다는 얘기가 전해지자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27일에는 아예 스코틀랜드로 날아가 2차례 더 만남을 가졌다.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이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러트닉 장관에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협상을 스코틀랜드에서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거기서 마스가 제안을 구체화시켰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워싱턴으로 복귀한 러트닉 장관과 다시 만나 고위급 협상을 통해 최종안을 다듬어 나갔다.

이 시기 한국에서도 대통령실 주재로 경제·통상 관련 긴급대책회의가 연이어 소집되는 등 긴박한 상황이 계속됐다. 특히 앞서 우리 협상단이 일본이 내놓은 5500억 달러(약 759조 원) 규모의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에 못 미치는 투자안을 제시하자 미국 측의 증액 압박이 이어져 고민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경제 사령탑'인 구 부총리가 29일 미국에 도착하면서 협상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구 부총리는 김 장관, 여 본부장과 함께 러트닉 장관 등 미국 측과 두 차례 집중 협상을 했다. 이들은 상호관세 문제와 한미 산업 협력 방안 등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최종안 만들기에 집중했다.

이 외에도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향한 조현 외교부 장관을 시작으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등 민관이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힘을 모았다.

한국 협상단은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지막 담판을 지었다. 정부는 특히 한국이 제안한 조선업 협력안인 '마스가' 프로젝트가 이번 무역 협상 합의에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 합의에 이르도록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은 마스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며 "이 프로젝트는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그리고 조선 관련 유지 보수 업무인 MRO 등을 포함해 조선업 전반에 대해 우리 기업들의 수요에 기반해 사실상의 우리 사업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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