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후지레비오 혈액 진단 FDA 승인

알츠하이머병을 피 한 방울로 진단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고가의 뇌척수액 검사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스캔에 의존하던 치매 진단 방식이 혈액 기반 진단으로 빠르게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잇따른 기술 개발과 규제 승인으로 조기 진단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다.
29일 제약바이오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5월 1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일본 진단기업 후지레비오 다이애그노스틱스(Fujirebio Diagnostics)가 개발한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병 진단 검사를 승인했다. 이 검사는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지표로 알려진 뇌 속 ‘베타 아밀로이드’(β amyloid) 플라그를 혈액을 통해 간접적으로 식별할 수 있다. FDA가 해당 방식의 혈액검사를 정식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위해선 뇌척수액검사나 PET 스캔을 활용해야 했기에 비용과 접근성 측면에서 환자들의 부담이 컸고, 조기 진단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혈액검사는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는 ‘게임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다.
혈액 기반 진단 기술이 상용화되면, 환자 개개인의 진단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무엇보다 알츠하이머병 조기 치료제인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나 ‘키순라’(성분명 도나네맙)와 같은 항체 기반 신약의 투약 대상 선별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들 치료제는 뇌 속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이 확인된 초기 환자에게만 처방이 가능하다. 기존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한 고비용 진단이 필수였지만, 혈액검사를 통해 보다 쉽게 환자를 선별할 수 있게 되면 약물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병 진단 기술은 글로벌 진단기업 간 핵심 전략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스위스 로슈는 이달 23일(현지시간) 아밀로이드 병리 지표인 인산화 타우 단백질의 일종인 pTau-181을 측정하는 혈액검사 ‘Elecsys pTau181’ 제품으로 유럽 의료기기 인증(CE 마크)을 획득했다.
이 제품은 787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인증을 받아, 알츠하이머병 조기 진단 기술의 신뢰성을 입증했다. 해당 기기를 활용하면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에 대한 추가 확진 검사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불필요한 추가검사를 피해 자신에게 맞는 치료 경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레켐비의 제조사인 일본 에자이(Eisai)와 삼성 라이프 사이언스 펀드로부터 각각 투자를 받은 미국 진단 기업 C2N 다이아그노스틱스(C2N Diagnostics)도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병 검사법을 개발하고 있다. C2N 다이아그노틱스는 이달 15일(현지시간) 연구용으로만 사용되는 C2N eMTBR-tau243과 C2N %p-tau MAA를 출시했다. 회사는 해당 분석법들이 바이오제약 임상 시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알츠하이머병 병리학적 평가를 개선하고 새로운 치료 전략에 대한 정밀의학 접근법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적 자선가이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치매 조기 진단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 에세이를 통해 “치매에 대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다. 지금은 더 많은 예산을 연구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는 2017년에도 알츠하이머병 퇴치를 위해 개인적으로 1억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치매 환자수는 급격히 늘고 있다. 본지가 중앙치매센터 ‘치매·경도인지장애 추정 유병현황’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19년 국내 추정치매환자수는 81만6393명(유병률 7.21%)이었고, 2050년 추정치매환자수는 229만3537명(유병률 10.33%)으로 집계됐다.
또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치매 환자 수는 약 57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대다수가 알츠하이머병 환자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2050년에는 환자 수가 1억52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