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계 첫 국제재판부 설치했지만⋯7년간 선고는 달랑 3건 [글로벌 특허분쟁 시대, 홀로 선 한국]

특허법원 국제재판부‧중앙지법 지재전담부 2018년 신설해 운영
기업 간 특허 분쟁도 해외 법원으로⋯“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필요”
국제재판부, 해외기업 간 국내 특허권 다툼 첫 영상재판 진행 예정

▲국내 지적재산권 분쟁 관련 국제재판부 현황

한국 법원이 글로벌 지식재산권(IP) 분쟁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며 2018년 설치한 국제재판부가 7년째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올 하반기부터 특허권 분쟁 소송에 영상 재판을 처음 도입하며 활성화에 나설 예정이지만,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IP 허브국가’ 구상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허법원에 2018년 6월 국제재판부가 설치된 이후 지금까지 선고된 국제재판 사건은 2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지식재산 전담재판부가 마련된 서울중앙지법도 국제사건 선고는 단 1건이 전부였다.

2017년 당시 국제재판부 신설을 담은 법원조직법의 취지는 ‘우리나라가 국제 특허분쟁 해결의 중심지가 되자’는 것이었다. 특허 관련 소송 중 외국인·외국법인이 당사자인 사건이 급격히 늘자 한국이 선호 법정지(法廷地)가 되도록 선점하자는 구상이다.

특허법원 국제재판부는 전세계 사법 사상 최초였다. 현행법상 법정에서는 ‘국어 사용’이 원칙이지만, 국제재판부는 소송 당사자들이 동의하면 외국어 변론과 증거 제출이 가능하다. 특허 등 소송 1심은 지방법원, 2심은 특허법원이 맡는 식이다.

물론 나라마다 특허와 관련 법, 관할권이 다르기에 특허관리전문회사(NPE) 등이 해외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우리기업에 특허 소송을 제기해 다투는 것과 국내에 있는 국제재판부 사건은 차이가 있다.

▲2020년 1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사63-1부(박원규 부장판사)가 미국계 기업이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에 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미국 등 해외 법원처럼 국제 특허소송 허브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잡은 우리 법원은 정작 아시아는커녕 국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 간 특허 분쟁마저도 해외 법원에서 다뤄지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2월 하이브리드 타이어코드 관련해 HS효성첨단소재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법원에서도 사안을 다투고 있지만, 현재 미국 특허심판원(PTAB)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2019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배터리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도 같은 해 9월 ITC와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맞불 소송을 놓으면서 분쟁이 극대화했다.

이후 ITC는 2021년 LG화학 손을 들어줬고, SK 측은 2조 원 규모 합의금을 지급하는 조건에 합의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해외 진출 기업인 만큼 법원 관할 문제도 있지만, 결국 국내에서 소송을 진행할 요인 자체가 없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특허법원 (연합뉴스)

전우정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기 때문에 (특허) 침해 사실을 밝히기가 어렵고, 침해를 밝혔다고 해도 손해배상액을 증명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특허침해 소송 시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 증거를 강제로 제출하게 해 사실관계를 밝혀내게 하는 절차다.

강동희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도 “미국에서 소송하면 디스커버리 제도 덕분에 침해에 대한 증거 등이 전부 밝혀질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특허법에 ‘자료 제출 명령 제도’가 있어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국내 대기업은 주요 각국의 특허를 다 받아놓기에 해외에서도 특허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소송에서 불리한 건 비용”이라며 “미국 대리인을 선임해야 하고, 소송 절차를 국내 기업에서 컨트롤 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리 법원은 우선 국제재판 참여 요인부터 늘린다는 계획이다. 특허법원 관계자는 “그간 국제재판부가 잘 활용되진 못했다”며 “소송 당사자 양측 의사가 합치돼야 하는데, 피고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 강구하고 있고, 올 하반기부터 영상 재판을 도입한다”며 “각자 언어로 변론하면 (재판에서) 동시통역이 된다. 참여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특허법원 국제재판부에서 올 하반기 국내에서 해외 두 기업 간 특허권을 다투는 사건을 영상 재판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국제재판부 신설 이후 3번째 사건이다.

특허법원 관계자는 “사건은 접수됐으나 기일은 아직 안 잡힌 상태”라며 “10~11월 첫 공판이 열릴 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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