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 반도체의 가치는 ‘핵무기’와 동급으로 불립니다. 국가 안보 핵심 자산이자 국력과 직결된 전략 산업이죠. 첨단 반도체 기술의 지배력은 글로벌 기술 패권과 군사 안보의 핵심으로 통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배경으로도 꼽히죠. 이렇듯 중요한 반도체는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수출 산업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간판 반도체 기업으로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본지는 ‘ET의 칩스토리’ 코너를 통해 반도체 기술 트렌드와 업계 동향을 심층 분석하고, 시장의 흐름을 조명할 예정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반도체 시장의 핵심 이슈를 짚어보며, 독자 여러분께 유익한 인사이트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엔비디아, 대만에 최초 설계 신사옥 건설
TSMC,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70% 달해

전 세계 모든 반도체 칩은 대만을 거쳐 탄생한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빠르게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엔비디아가 대만에 연구개발(R&D) 거점과 슈퍼컴퓨터 구축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대만 집중화’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 ‘컴퓨텍스 2025’ 기조연설에서 타이베이 메이터우 스린 지역에 엔비디아의 새 사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황 CEO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엔비디아와 대만 간 전략적 협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했다.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으로 명명된 이 사옥은 AI 칩 설계, 로보틱스, 양자컴퓨팅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를 포함한다. 실리콘밸리 본사에 준하는 규모로 지어지며, 엔지니어 1000여 명 이상을 고용할 예정이다. 엔비디아가 미국 외 지역에 반도체 설계 기능을 갖춘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엔비디아는 이와 별개로 대만 정부 및 주요 기업들과 함께 AI 팩토리 슈퍼컴퓨터 구축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폭스콘, TSMC 등과 공동으로 대만 최초의 슈퍼컴퓨터를 개발해 AI 활용 생태계를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설계는 엔비디아, 생산은 TSMC, 서버 제작은 폭스콘이 각각 맡아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시스템 구현까지 전 과정을 대만에서 일원화하는 구조다.
이 같은 투자 확대는 대만이 글로벌 AI 산업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기업 TSMC의 위상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파운드리는 팹리스 기업이 설계한 칩을 그대로 제조하는 전문 생산 공장을 말한다. 반도체 설계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파운드리를 거치지 않으면 칩이 실물로 나올 수 없다.
TSMC는 현재 28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상의 레거시 공정부터 2나노 첨단 공정까지 폭넓은 공정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2028년에는 1.4나노 양산에 돌입한다. 반도체에 AI 추론 및 학습 기능이 강화될수록 첨단 제조 공정 적용이 필수적이다. 엔비디아, AMD,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TSMC를 찾는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TSMC는 지난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67%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도 탄탄하다. 반도체 산업은 대만 GDP의 약 20%를 차지한다. 라이칭더 총통은 컴퓨텍스 축사에서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 등으로 AI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며 “대만은 반도체·통신·AI 산업 체인을 완성한 국가”라고 강조했다. 대만의 경쟁력은 칩 설계와 생산뿐만 아니라 패키징 등 전방위에 걸쳐 있다. 미디어텍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 세계 1위에 올라 있으며, 폭스콘은 AI 열풍 속에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 중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행사들도 대만에 집중되고 있다. 한때 PC 중심의 전시회였던 컴퓨텍스는 이제 각국 기업들이 최신 AI 제품과 기술을 공개하는 장으로 재탄생했다. 올해 행사에는 30여 개국 1400개 업체가 참가해 4800여 개의 부스를 차렸고 방문객도 8만6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오는 9월에는 ‘세미콘 타이완 2025’도 타이베이에서 개최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만은 반도체 생산뿐 아니라 설계, 패키징까지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탄탄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며 “엔비디아 등 세계 기업들의 투자가 본격화하면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