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과 미국 중심 재편 거대한 두 흐름으로
중국 의존도 낮추며 인도ㆍ동남아로 이동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 발맞춰 북미 거점 구축

글로벌 제조업 전반에서 ‘공급망 블록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갈등,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과거와 같은 글로벌 분업 체제의 효율성이 약화하고 있어서다.
공급망 블록화는 국가 간 분쟁, 관세 전쟁, 패권 경쟁 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지역·국가 단위로 쪼개지고 재조정되는 현상을 뜻한다. 과거에는 효율성과 비용을 중심으로 생산거점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정치적 리스크와 경제 안보가 핵심 고려 요소로 부상했다.
최근 수년간 진행된 공급망 블록화의 거대한 흐름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에 집중됐던 생산기지를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으로 분산시키는 ‘탈(脫)중국’ 움직임이다. 또 다른 방향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발맞춰 북미 중심의 생산과 조달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국내 주요 제조업체도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전략을 재정비하는 추세다.
과거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주요 산업군의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리스크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인건비가 상승하고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까지 맞물리면서 기업들은 생산거점을 동남아나 인도로 분산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공장을 철수한 이후 베트남과 인도로 주요 생산기지를 옮겼다. 인건비 부담과 현지 시장 내 경쟁 심화, 미중 갈등으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탈중국 역시 정치적 이슈로 시작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발단이 됐다. 현지 판매가 급감한 사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점유율 역시 고꾸라졌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공장을 축소하면서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으로 눈을 돌려 생산거점을 구축했다. 급속한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률이 가파른 신흥 시장에 투자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은 글로벌 기업을 북미 지역으로 빠르게 편입시켰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등은 북미 내에서 생산한 제품에만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북미에 투자를 유도했다.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강력한 관세정책으로 미국 중심의 공급망 블록화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업계는 IRA 시행 이후 북미 투자를 대폭 늘려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완성차 업체들과 손잡고 미국과 캐나다에 다수의 생산 공장을 짓는 중이다. SK온은 포드와 손잡고 미국 테네시, 켄터키에 공장을 건설 중이며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합작한 인디애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판매량 확대에 따라 꾸준히 현지 생산기지를 확대해왔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에 이어 올해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완공하며 100만 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미국 정부의 관세정책에 대응해 HMGMA의 생산능력을 현 30만 대 규모에서 50만 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바이든 정부 당시 미국 투자를 결정해 생산거점을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가동 중이며, 텍사스주 테일러에도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라파예트에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건설 중이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국제 분업 구조의 형성 동력이 비용과 효율이었다면 이제는 안보와 주권 집중화로 변화하고 있다”며 “주력 산업과 첨단 산업 공급망은 북미 쪽으로, 비용 우위 제조업들은 중국을 벗어나 인건비가 더 저렴하고 관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들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