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 뉴진스 '이미지' 베꼈다?"…민희진 이례적 주장, 업계 판단 어떨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4-04-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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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뉴진스(왼쪽), 아일릿. (출처=뉴진스, 아일릿 공식 인스타그램)

가요 기획사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의 갈등이 연일 격화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하이브가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시도' 정황을 포착, 감사에 착수하면서부터입니다. 하이브는 22일부터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일부 임원들에 대한 내부 감사에 돌입했는데요.

하이브는 이들이 어도어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대외비인 계약서를 유출하는 등 불법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어도어의 지분은 하이브가 80%, 민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20% 보유하고 있죠.

반면 민 대표 측은 경영권 탈취 시도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하이브의 또 다른 산하 레이블인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신인 그룹 아일릿이 자신이 프로듀싱한 그룹 뉴진스의 콘셉트를 허락 없이 모방한 것에 항의하자, 해임을 요구받았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현재 하이브와 어도어는 각각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 치열한 법정 싸움을 예고한 상황인데요. 불똥이 애먼 곳으로 튀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달 데뷔해 한창 활동 중인 아일릿과 다음 달 컴백을 앞두고 박차를 가하는 뉴진스에 부정적인 영향이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입니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뉴시스)

하이브 vs 어도어, 법적 쟁점은?…'경영권 탈취 의혹' 어떻게 흘러갈까

하이브는 22일 어도어 측에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습니다. 민 대표의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과 함께 감사 질의서도 보냈는데요. 이 질의서를 통해 △경영권 탈취 목적으로 취득한 핵심 정보 유출 △부적절 외부 컨설팅 의혹 △아티스트 개인정보 유출 △인사 채용 비위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이브가 감사에 착수하자, 어도어 측은 공식 입장을 내고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사태'를 주장했습니다. 어도어는 “어도어 소속 아티스트인 뉴진스가 이룬 문화적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아일릿은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안무, 사진, 영상, 행사 출연 등 연예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하고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아일릿의 데뷔 앨범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을 맡았는데요. 어도어는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는 빌리프랩이라는 레이블 혼자 한 일이 아니며 하이브가 관여한 일“이라며 ”K팝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하이브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성공한 문화 콘텐츠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카피해 새로움을 보여주기는커녕 진부함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죠.

어도어 측은 카피 의혹 등에 대해 하이브와 빌리프랩에 문제 제기를 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기에 급급했으며 되레 민 대표의 직무 정지 및 해임 절차를 통보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도어 측이 다른 쟁점을 들고 반격하자,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사내 이메일을 통해 "이번 사안은 회사 탈취 기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사안이라 이를 확인하고 바로잡고자 감사를 시작하게 됐다"며 "이미 일정 부분 회사 내외를 통해 확인된 내용들이 이번 감사를 통해 더 규명될 경우 회사는 책임 있는 주체들에게 명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 대표는 “지금 문제가 된 건들은 아일릿의 데뷔 시점과는 무관하게 사전에 기획된 내용들이라는 점을 파악했고, 회사는 이러한 내용들을 이번 감사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선을 그었죠.

하이브는 어도어에 감사 질의서를 보내면서 24일 오후 6시까지 답변서를 제출해달라고 했습니다. 어도어 측은 기간 내 답변을 했지만, 공개 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해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선 하이브는 민 대표 측으로부터 받은 답변서를 확인하고, 임시주주총회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이브는 30일 어도어 이사회 소집을 요구한 상태인데요. 어도어의 임시주주총회(임시주총) 소집 허가를 법원에 청구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입니다. 현재 어도어 이사회가 민 대표 측근으로 구성돼 있어 강제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죠. 상법 제366조에 따라 임시주총 소집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면 주주는 법원 허가를 받아 총회를 소집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가 어도어 지분 80%를 가진 최대 주주인 만큼, 임시주총이 열리고 하이브가 결단을 내리면 민 대표의 해임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자회사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시도 여부를 감사 중인 하이브가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어도어 경영진 3인의 단체 대화방에서 4일 오간 대화. 부대표의 구상에 대표이사가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하이브)

'탈 하이브 시도' 정황 속속 드러나나…중간 감사결과 발표

하이브는 25일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하이브는 어도어 대표이사 주도로 경영권 탈취 계획이 수립됐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물증도 확보했는데요. 감사대상자 중 한 명은 조사 과정에서 경영권 탈취 계획, 외부 투자자 접촉 사실이 담긴 정보자산을 증거로 제출하고 이를 위해 하이브 공격용 문건을 작성한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대면 조사와 제출된 정보자산 속 대화록 등에 따르면 어도어 대표이사는 경영진들에게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이브를 압박할 방법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에 따라 아티스트와의 전속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방법,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 계약을 무효화하는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됐죠. '글로벌 자금을 당겨와서 하이브랑 딜하자', '하이브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해 크리티컬하게 어필하라', '하이브를 괴롭힐 방법을 생각하라'는 대화가 오간 것도 포착됐습니다. 대화록에는 '5월 여론전 준비', '어도어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서 데리고 나간다'와 같은 실행 계획도 담겼는데요. 하이브는 감사대상자로부터 "'궁극적으로 하이브를 빠져나간다'는 워딩은 어도어 대표이사가 한 말을 받아 적은 것"이라는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하이브는 해당 자료들을 근거로, 관련자들에 대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이날 고발장을 제출할 예정인데요. 어도어의 영업 비밀 침해 여부를 짚고 넘어갈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하이브는 민 대표 측근이 재무 정보와 사업상 계약 내용 등 회사 영업 비밀을 어도어에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죠.

민 대표 측은 하이브가 주장한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민 대표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 대강당에서 어도어 공식 입장 발표를 위한 긴급 기자 회견을 개최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민 대표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직장인이 사수가 마음이 안 들거나 직장이 마음에 안 들면 직장에 대한 푸념을 할 수 있지 않나”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제가 나눈) 사담을 진지한 것으로 포장해 저를 매도한 의도가 궁금하다"며 "내가 하이브를 배신한 게 아니라 하이브가 날 배신한 것이다. 빨아 먹을 만큼 빨아 먹고 찍어 누르기 위한 프레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죠.

▲(사진제공=어도어,_빌리프랩)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경영권 탈취 의혹 무마 의도인가

또 다른 주요 쟁점은 어도어 측이 주장한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입니다. 일각에서는 민 대표 측이 경영권 탈취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이 같은 주장을 했다고 보지만, 업계에서는 창작의 고유성에 대한 논쟁에 불을 댕겼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간 국내 문화예술계 카피, 즉 표절 논란이 법정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정량적인 기준이 부재해 법적 시비를 가리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이에 판단의 주체는 주로 대중이 되어왔죠.

아일릿 데뷔 당시 일각에서는 '뉴진스가 연상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긴 생머리, 청순함을 강조한 콘셉트, 앨범 아트 구도나 연출, 색감 등이 뉴진스의 콘셉트, 무대, 앨범 등과 유사하다는 겁니다.

사실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는 표절 의혹이나 유사성이 흔한 논쟁거리입니다. 아이돌은 음악뿐 아니라 각 그룹을 대표하는 색깔, 동물 같은 정형화된 요소는 물론이고 콘셉트, 이미지라는 비정형적인 요소를 통해 타 그룹과 차별점을 꾸리고 활동을 전개합니다.

르세라핌은 첫 번째 정규앨범 ‘언포기븐'(UNFORGIVEN) 발매 당시 스페인 가수 로살리아의 노래, 창법을 지나치게 '참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로살리아는 ‘제65회 그래미어워즈’에서 최우수 라틴 록·얼터너티브 앨범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가수로, 라틴 음악을 본인만의 색깔로 해석해 독보적인 음악 장르를 구축하며 주목받았죠. 르세리핌의 타이틀곡 ‘언포기븐’의 일부가 공개되자마자, 로살리아의 ‘치킨 데리야키'(CHICKEN TERIYAKI)의 창법과 리듬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트위터와 온라인 커뮤니티, 평론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다만 르세라핌은 “저희의 곡과 콘셉트는 저희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 저희만의 고유 창작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밝혔죠.

엔믹스는 2022년 데뷔 앨범이 에이티즈의 '항해사' 콘셉트와 뮤직비디오 일부, 콘셉트 포토 등과 유사하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한때 X(옛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는 'JYP_표절논란_해명해'라는 내용의 해시태그가 오르기도 했죠.

다만 이 같은 주장들은 소속사 측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팬덤 사이 열띤 논쟁에 그쳤지만, 어도어는 자사 그룹 뉴진스의 이미지를 아일릿이 베꼈다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아이디어, 노하우 등은 그 자체가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비슷해 보인다는 점으로는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도 없는데요. 뉴진스 이후 와이투케이(Y2K) 감성과 이지리스닝을 콘셉트로 들고나온 그룹은 아일릿만이 아닙니다. 뉴진스가 해당 콘셉트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시초' 역시 아닌데요.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JTBC 유튜브 라이브 '뉴스들어가혁'에 출연해 "보통 어떤 한 그룹이 치고 나가면 그 그룹을 따라서 유사한 형태의 그룹이 만들어진다든지, 그런 음악 스타일을 레퍼런싱한다는 것은 대중음악에서 워낙 자주 일어난 일"이라고 짚었습니다.

실로 소속 그룹 색깔을 이어가는 건 SM, YG, JYP 등 메이저 기획사들이 고수해왔던 방식입니다. SM은 ‘핑크블러드’(SM 고유의 색깔)로 홍보를 하고, YG는 투애니원-블랙핑크-베이비몬스터로 이어지는 힙합 베이스의 걸그룹을 계속 론칭해왔죠. 같은 하이브 소속인 아일릿이 뉴진스와 일부 유사성을 띈다고 해서 법정 싸움에 나설 수 있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소속사와 레이블 간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아일릿과 뉴진스, 두 그룹도 연일 소환, 대중의 피로감을 자아내는 상황입니다. 아티스트를 보호해야 할 소속사가 되레 아티스트들의 활동과 성과에 얼룩을 남기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는데요. 유례없는 갈등이 어떤 결말로 막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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