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가 베일을 벗었다. 파라과이전과 코스타리카전을 치르며 가능성과 현주소를 확인했다. 가능성의 중심에는 선수가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입관 없이 제로베이스에서 선수를 기용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두 경기에서 대표팀 23명 중 김승대를 제외한 22명을 출전시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을 유도했다. 효과는 있었다. 파라과이전에서 조영철 중심의 제로톱으로 공격의 다변화 가능성을 확인했고, 2년 11개월 만에 대표팀 선발로 출전한 홍철은 그라운드를 쉼없이 움직이며 상대 공격을 차단했다. 선수 기용의 폭을 넓히면서 다양한 전술을 시도했다. 기성용, 장현수가 담당하던 탈압박을 남태희, 이청용도 가담하며 허리싸움의 무게를 더했다. 빠른 템포의 공격을 선보였고 유기적인 전술 변화도 돋보였다.
반면 골 결정력 부족과 수비 불안이라는 과제도 받아들었다. 코스타리카전에서 상대의 전방압박에 흔들렸고 세트피스, 역습 상황에서 허둥댔다. 상대에게 내준 세 골 모두 한국 축구의 현 주소를 보여줬다. 패널티 지역에서의 공중볼 경합 후 흘러나온 볼을 셀소 보르게스에게 뺏기며 선취골을 내줬고, 후반 초반엔 수비 조직이 정비되지 않아 추가로 점수를 허용했다. 특히 세 번째 실점의 경우 상대의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수들의 적극적인 마크가 이뤄지지 않아 골키퍼 김승규가 상대 공격수 두명을 맞는 상황이 벌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이 강조한 수비 조직력은 강팀 앞에서는 위력이 사라졌다. 공격에서는 골 결정력 부족을 드러냈다. 좋은 득점찬스에서 손흥민과 이동국이 종종 엇박자를 냈고 거센 압박을 주도하던 미드필더진은 후반 체력이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시작이다. 승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고, 패배는 쓰지만 한국축구의 체질개선에 활용하면 된다. 슈틸리케호는 다음 달 중동 원정을 떠나 A매치 2연전(14일 요르단, 18일 이란)을 치르며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을 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