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단통법… 근본부터 반문해 볼 때다

입력 2014-10-10 10:38수정 2014-10-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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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산업부장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이 시행된 지 10일째. 예상은 되었지만 생각보다 더 큰 파장이 국내 휴대폰 시장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단통법은 소비자들이 차별없이 적절한 가격에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해당 법의 시행은 이동통신업체의 배를 불린 반면, 소비자들은 차별없이 모두 비싸게 휴대폰을 구입해야 하고 제조사는 판매량 하락을 걱정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먼저 이통사들을 살펴보자.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첫 주인 1∼7일 이통 3사의 일일 평균 가입자는 4만4500건으로 지난달 평균(6만6900건)에 비해 33.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신규 가입자가 3만3300건에서 1만4000건으로 58% 줄었고, 번호이동도 1만7100건에서 9100건으로 46.8% 감소했다.

휴대폰 보급률이 110%를 넘은 현 국내 시장에서 신규 가입자 수는 제한적이다. 사실 신규 가입자 수는 타 통신사를 해지하고 다른 통신사에 새로 가입한 수치다. 신규 가입자가 줄고 번호이동도 줄었다는 것은 이통사들이 타 통신사 사용자들을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며 유치할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이미 유치한 가입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수입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가장 남는 장사다. 단통법 역시 7만원 수준의 요금제를 사용할 경우에만 보조금 상한액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이통사들은 수지가 맞는 고가 요금제 사용자들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한 투자증권업체는 내년에는 이통사 3곳의 마케팅 비용이 전년 대비 5.6% 감소해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39.5%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 경쟁이 줄고, 나아가 전체 보조금 지급 규모가 줄어든 것이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 단통법 시행과 맞물려 이통3사의 주가가 치솟았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해 이통3사들은 불법 보조금 지급에 따른 사상 최대의 과징금과 영업제한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를 만회시켜주는 듯한 단통법이 시행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부는 “통신 3사가 이제 합법적인 담합을 하게 됐다”는 세간의 평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ㅤ

제조사에게 단통법은 국내 휴대폰 시장의 위축에 따라 판매량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게다가 비싼 휴대폰 구매 비용을 틈타, 저가의 중국 스마트폰이 대거 국내 유입되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업체들은 저가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급성장, 한국 업체들의 가장 큰 위협자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고객들은 중국 저가폰이나 알뜰폰 같은 것을 구매하는 게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쯤되면 발언의 적절성을 떠나 단통법이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갑자기 비싼 휴대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단통법 폐지를 위한 1만 소비자 서명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법이 시행된 지난 1일 이후 방통위가 홈페이지에 마련한 ‘단말기 보조금 소통마당’에는 수백여개가 넘는 실명 비판이 쏟아졌다.

휴대폰 대리점의 상황은 더욱 딱하다. 판매량 급감에 이들은 가게 임대료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만일 단통법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속절없이 무너진다면, 그 자리는 누가 채우게 될까. 바로 이통사들의 직영점이지 않을까.

해외의 경우 공짜폰 마케팅은 일반적이다. 최신 기종들은 2년 약정을 기준으로 30만원 전후, 출시 1년 가량이 지난 기종들은 공짜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아직 한국에 출시되지도 않은 ‘아이폰6’가 공짜로 약정 판매되고 있다. 당연히 불법이 아니다. 해외의 경우 국내와 달리 요금제 할인이 없는 대신, 국내보다 훨씬 많은 보조금을 통해 제품 가격을 크게 낮춰 시장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현실성 없는 27만원 가량의 보조금을 상한선으로 정해 그 이상의 지급을 불법으로 명시하고 제재하는 정책이다. 여기에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보조금 기준에 시장이 편법을 찾자, 이를 다시 단통법으로 가로막아 시장 생태계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가격 체제의 기본은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 정부는 보조금의 기준을 현실적으로 대폭 상향 조정하고 답함 등의 불공정 행위만을 관리·감독하길 바란다. 단통법은 결과적으로 국민 혼란만 가져왔고, 이통사와 제조사 등 업계 갈등을 초래했으며, 한국 휴대폰 시장을 냉각시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스마트폰을 싸게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돼선 안된다”며 단통법 국회 통과를 지지했다. 그렇다면 왜 소비자들은 추운 새벽에 줄을 섰을까. 줄을 서게 한 것은 시장의 탓일까, 아니면 현실성 부재의 오락가락 정책 탓일까. 근본부터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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