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 논설실장
외환위기는 쓰나미처럼 삽시간에 경제를 휩쓸어버린다. 그래서 멀쩡할 때 대비해야 한다. 어려울 때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방파제를 세워 위기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알리는 경고등까지 들어왔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로 서둘러야 한다.
주요 통화권은 준비에 들어갔다. 키워드는 국제적 동맹이다. 양국의 통화를 맞교환하는 중앙은행 간 스와프를 늘리고 직거래 외환시장도 속속 개설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말 위안화 직거래를 개시했다. 이에 따라 유로화는 주요 8개국에서 직거래되고 있다. 앞서 EU와 중국은 2013년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중국은 현재 한국을 포함한 약 20개국과 통화 맞교환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한국을 포함해 14개국과 통화 스와프를 맺었던 미국은 현재 EU, 일본 등 5개국과 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신흥국도 급격한 외화 유출입을 저지하기 위해 벌써 방어막을 치고 있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공언하고 재투자 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등 외국인에게 추파를 보내고 있다.
각국이 통화 안전망을 보강하고 있는 것은 달러화가 양적완화 6년 만에 슈퍼 달러로 귀환할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쯤 미국이 금리까지 오릴 경우 달러화가 급격하게 빠져나가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상황은 더 고약하다. 아베노믹스로 엔저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강한 달러-약한 엔화 구조가 재현되고 있다. 20년 전 한국경제를 외환위기로 내몰았던, 그 까다로운 틈새로 다시 말려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를 반영한 흐름이라 중장기 흐름일 가능성이 높다. IMF도 7일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2.2%로 크게 상향 조정한 반면 일본은 1.6%에서 0.9%로 대폭 내렸다.
한국은 뜻밖에도 느긋하다. “엔저 등 대외 리스크를 면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다짐뿐이다. 세계 7위인 외환 보유고와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에 안주한 채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낙관은 위험하다. 외국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근간이 흔들린다. 난공불락 같은 외환보유고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9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3644억 달러. 외국인이 8월 말 기준 보유 중인 상장증권 규모는 554조원이다. 이 중 20~30%가 유출되면 1040억~1560억 달러가 사라진다. 6월 기준 1년 미만 단기부채는 1307억 달러에 달한다. 고약한 가정이지만 이 경우 외환보유고는 766억~1286억 달러로 쪼그라든다. 올해 3분기 수입액 1307억 달러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안전치가 아니다. 게다가 급할 때 실제 동원할 수 있는 액수는 더 적을 수 있다. 그렇다고 위험한 수준이란 뜻은 아니다. 외환보유고의 공급원인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올해 84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여기에 중국 등과 체결한 10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도 있다.
그러나 방어구조는 허술하다. 특히 국제적 방어망이 취약하다.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세계 3대 주요 통화 중 어느 한 곳과도 통화 스와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미국, 일본과의 계약이 종료된 후 지금껏 재개시키지 못하고 있다. 외환 직거래도 부진하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통화 직거래를 합의했을 뿐이다. 무역 규모 세계 9위, 경제 규모 세계 15위 국가에 걸맞지 않는 원화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맺은 달러 스와프가 위기 극복의 돌파구가 됐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벌써 잊은 듯하다.
멀쩡한 지금이 원화 동맹을 구축할 적기다. 국제적 방어망은 위기 극복뿐만 아니라 예방에도 상당한 효험이 있다. 9일부터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외환당국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