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거장’ 이병훈 PD “나의 길은 사극, 의미가 있기에 도전한다” [인터뷰]

입력 2014-10-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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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PD(사진=장세영 기자 photothink@)

“김수현 작가, 이병훈 PD, 그리고 윤석호 PD가 없었다면 한류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 5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개최한 ‘별에서 온 그대 열풍으로 본 중국사회의 이해’라는 주제의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같이 말했다. ‘사랑이 뭐길래’의 김수현 작가가 중국에서 한류를 촉발시킨 주역이었다면 ‘겨울연가’ 윤석호 PD는 일본에서 한류를 폭발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류의 또 다른 주인공 이병훈 PD는 ‘대장금’으로 지구촌 한류를 일으킨 당사자다.

한국 사극 연출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인 이병훈 PD를 만났다. “드라마를 연출하지 않으면 공부하고 학교 강의 나가지요.” 1970년 MBC에 입사해 1974년 ‘113수사본부’를 통해 연출자로 데뷔한 이병훈 PD는 사극 연출의 거장이다. 작고한 김제형 PD와 함께 한국 사극의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1980년대 폭발적 인기를 끈 ‘암행어사’,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중 ‘설중매’, ‘인현황후’, ‘임진왜란’ 등 60%대의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한국 사극계의 판도를 흔든 ‘허준’, 소설 원작을 완성도 높게 드라마화해 30%대 시청률을 올린 ‘상도’, 사극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하며 50%의 시청률을 보인 ‘대장금’, 그리고 20~40%대의 ‘이산’, ‘동이’, ‘마의’ 등이 그의 작품이다. 작품 목록만 봐도 그가 어떤 연출가인지 금세 드러난다.

“나의 길은 사극이다. 내 젊은 날을 바쳐왔고 앞으로 바치게 될 길이 바로 사극이다. 사극 덕분에 영광을 얻었고 숱한 날 고통을 겪었고 뜻하지 않은 기쁨을 누렸다. 사극은 현대극보다 힘들었지만 의미와 가치가 있기에 도전했다.” 그가 연출한 작품 하나 하나가 한국 사극사의 지평을 확장한 것이었지만 이병훈 PD에게는 도전 그 자체였다.

이병훈 PD는 “사극을 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적 흥미성 추구에서 오는 상위성(相違性), 졸속 제작에서 오는 표현 부족, 그리고 장기간의 작업에서 오는 매너리즘과 평안함을 추구하는 육체적 욕구에 굴복하는 안이함과의 길고도 긴 싸움을 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상도’의 소설가 고 최인호 작가의 “이병훈 PD는 어제의 성공은 과감히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도전과 새로움에 대한 추구를 하며 항상 스타트라인에 서 있는 신기록 스프린터”라는 수사가 참 맞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장금’으로 한국 사극사를 새로 썼을 뿐만 아니라 87개국에 수출되고 100여개국에서 방송되며 지구촌 한류를 일으키고 새로운 대중문화사의 이정표를 세운 것에 대해 이병훈 PD는 “처음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시청자들에게 사극을 통해 바람직한 여성상과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이 전 세계인에게도 통했다”고 말했다.

이병훈 PD는 늘 말한다. “나는 오늘도 드라마라는 꿈을 꾸지만 그것은 나만의 꿈은 아니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 특히 앞으로 자라날 세대들의 꿈을 대신 꾸고 있는 것이다. 작으나마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할 일은 오직 그것이다.”

이병훈 PD는 창간 4주년을 맞는 이투데이에 도전과 열정으로 독자와 네티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신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는 기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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