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와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업위)에서 ‘쌀 관세화’ 보고를 거친 후에 ‘양허표 수정안’을 WTO에 통보하려는 계획이 실제로는 법정 절차를 무시한 졸속 추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29일 김제남 의원(정의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이 관련 규정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부가 WTO에 양허표 수정안을 통지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2가지 필수절차를 진행하지 않거나 요식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우선 통상당국(산업부, 농림부, 외교부 등)은 ‘법제업무 운영규정(대통령령)’ 등에 따라 법제처에 조약안에 대한 심사를 받아야 하나, 아직까지 법제처에 심사요청을 한 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제처 심사는 법령안이나 조약안의 내용을 확정하기 전에 헌법위반, 법리상 문제, 절차적 문제 등이 없는지 판단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이다. 만약 내일(30일) WTO에 ‘양허표 수정안’을 통보하면 통상당국이 이 절차를 무시하는 셈이다.
국회 보고 역시 요식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통상조약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통상조약체결절차법’에 따라 통상조약의 ▲목표 및 주요내용, ▲추진일정 및 기대효과, ▲예상 주요쟁점 및 대응방향, ▲주요국 동향 및 ▲경제적 타당성 등을 보고하여야 한다.
그러나 산업부의 상임위 보고문서는 수정안의 주요 내용 등을 담고 있을 뿐, 조약체결의 목적, 기대효과와 경제적 타당성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핵심적인 유관쟁점인 ‘의무수입물량 처분권’, ‘긴급수입제한조치’, ‘DDA 향후 대응’ 등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조차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무수입물량 처분권’은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40.8만톤을 재량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여부의 문제이나 통상당국은 추후에 입장을 정하겠다는 것이며, ‘긴급수입제한조치’와 관련해서는 급격한 수입 증가 등을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 역시 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WTO에 ‘쌀 관세화’ 통보가 임박하였음에도 ‘쌀 관세화’가 국회 비준동의의 대상인지 여부도 판단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부는 ‘쌀 시장개방’ 통보하고 WTO 검증기간을 거친 후에 최종안을 놓고 국회 동의권 유무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관세율을 정하여 WTO에 통보하는 것 자체가 조약행위로서, 향후에 변경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오직 513%로 정한 관세율의 미세 조정일 뿐이지 결코 본질적 내용인 ‘쌀 관세화’가 변경되지 않기 때문에 국회 동의 여부를 당연히 판단하여 국회와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시점이다.
김제남 의원은 “통상기능이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이관된 후에 국회보고가 요식적으로 변하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관행이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해관계자와 합의보다는 인위적인 시한을 정하여 쌀 시장개방을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법제처 심의와 국회보고 조차 무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제남 의원은 “정부가 쌀 시장개방을 졸속으로 추진하는 문제를 국회에서 강력히 제기할 것”이라며, “이미 제기한 바와 같이 ’양곡관리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WTO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거나, 국회에 쌀 관세화 사전 비준동의를 얻어 추진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정상적인 쌀 관세화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