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한국 현대 건축물을 대표하는 공간사옥이 경매로 나와 150억원에 아라리오 그룹에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건축계와 문화계에 큰 화제가 되었다. 그 후 최근 9개월간의 리모델링을 통해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탈바꿈하여 지난 1일부터 개관전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 되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필자는 20일 오후 창덕궁과 현대사옥 사이에 위치한 공간사옥을 찾았다.
미술관으로 변신한 공간사옥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7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공간 사옥에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수집가이자 자신이 미술작가이기도 한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의 열정이 만난 공간은 그야말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검은 벽돌을 소재로 건축물 만드는 작가로도 유명한 김수근 건축가는 1972년 인근의 창덕궁 과 주변 한옥들과의 조화를 위해 기와장 느낌의 전돌을 주재료로 삼아 5층 규모의 공간사옥을 만들었다. 또한 인공적인 건축물과 자연과의 생성을 고려해 담쟁이 덩굴로 외벽을 장식했다. 검은색 벽돌에서 느껴지는 중압감 그리고 폐쇄적인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전통적인 한옥의 막힘없는 공간 연결 방식을 차용하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현대건축으로 되살고 우리 건축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또한 지하의 소극장은 ‘공간사랑’은 공옥진의 ‘병신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 등을 소개하며 문화운동의 발원지이자 문화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이런 의미가 깃든 건축물을 김창일 회장은 자신만의 예술적 열정을 투영하여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공간사옥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미술품들의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데 가장 많은 고심을 했다. 공간사옥의 특징인 사람 키 높이의 작은 공간과 붉은 색 벽돌을 그대로 드러낸 채 미로처럼 퍼져있는 좁은 계단과 무수한 방들은 모두 전시 공간으로 변화됐다.
김 회장이 심혈을 기우려 준비한 개관전 ‘리얼리(Really)?’에는 43명의 작가가 만든 96점의 작품이 건축물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총 38개의 방마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현대미술품들로 가득찼다. 이 작품들은 시간의 덧께가 내려앉은 소박한 벽돌 건물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옛 건물과 현대미술 그리고 간소함과 다채로움이 절묘한 합을 이루는 듯하다.
건물 안에는 지하 1층에서 시작해 지상 5층까지 권오상의 람보르기니 작품을 시작으로 크리스티안 마클레이, 백남준, 바버라 크루거, 네오 라우흐, 신디 셔먼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새로 만들어진 4층 통로로 이동하면 김수근 건축가의 직무실과 키스해링 작품이 이어진다. 그리고 좁은 원형계단을 내려가면 아이작 줄리앙, 트레이시 예민, 수보드 굽타, 코헤이 나와, 마크 퀸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을 볼 수 있다.
1998년부터 ‘씨킴(CI KIM)’이란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회장은 마지막 전시 작품을 자기작품으로 전시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만든 작품 속에서 '리얼리?'(Really?)를 계속 반복하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느낀 예술 속 불확실한 물음에 강한 확신 과 자신감의 표현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