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스위스 중학교 졸업생의 70%는 곧바로 직업학교에 진학한다. 보통 3~4년 과정의 직업학교 재학 기간 동안 학생들은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VET를 이수한다. 물론 VET를 마친 기업에 모두 취업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는 회사에 남지만 일부는 다른 기업으로 가거나, 상급 교육기관에 진학해 공부를 하기도 한다.
급여까지 주며 가르쳤던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버리면 애써 교육시킨 기업만 손해보는 게 아닐까. 필자가 스위스 방문 때 만난 로슈진단이라는 기업의 관계자는 이같은 질문에 대해 ‘VET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손해가 아닌 투자’라고 답했다. 당장 비용이 들긴 해도, 숙련도 높은 인력을 빠른 시간에 양성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필요 이상의 고학력 인재를 신규 채용해 훈련시키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스위스 기업들은 VET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편익이 우리 돈으로 연간 약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학생이 교육실습을 받기 시작한 3년차쯤부터 이미 비용을 회수하고 남는 구조라고 한다. 로슈진단의 경우, 전체 직원의 32%가 VET를 거쳤을 만큼 VET 출신 인재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처럼 학생선발에서 교육까지 기업이 주도하는 스위스의 직업교육제도는 개인의 진로 탐색 비용과 기업의 실무교육 비용을 절감시켜 주는 프로그램으로 주목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까지는 능력보다는 ‘간판’(학벌)이 중시되는 경향이 많다. 고급 엔지니어로 평가 받으려면 유명한 대학을 나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해서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선호한다.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국가 전체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기업 역시 신입직원들의 높은 이직률로 워낙 몸살을 앓다 보니 실무에 투입할 인력을 직접 양성하는 데는 다소 인색한 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이같은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년부터 국내 마이스터고 졸업생 20명을 선발해 스위스 일학습 병행 과정에 참여시키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고도의 숙련도를 요하는 첨단 산업기술 분야의 경우에는 책상에 앉아 이론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일대일로 배우는 교육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우리나라 청년 인재들이 세계 최고 기술수준을 자랑하는 스위스 기업에 간다면 고급 산업기술을 손쉽게 배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만의 일학습 병행 제도를 만드는 데도 이들의 경험이 소중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세계적 기계업체 뷸러와 맥슨모터 등 일부 재한 스위스 기업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온 상태이다. KIAT는 향후 다른 재한 스위스 기업들과도 업무협약을 추가로 체결해 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한국의 기업들은 끊임없는 제조업 혁신,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기술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기업들도 미래 잠재력을 가진 인재에 대해 선행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기업은 채용한 인력에 대한 교육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기술인력을 사전에 조기 양성하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스위스는 기업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현장교육을 주도했기 때문에 일학습 병행 제도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직접 주도해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학생과 기업이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를 줄이고 인력의 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