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결과가 발표된 18일 오전 10시 40분, 모두가 깜짝 놀랐다. 현대차그룹 컨소시엄(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은 한전에서 발표한 감정평가액(3조3346억원)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을 입찰가격으로 써냈다. 이는 현대차가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총 8조3000억원)보다 2조원 이상 많은 액수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고 당시에 받은 충격을 전했다.
이번 인수로 정 회장은 △글로벌 빅5 자동차 기업 △일관 종합제철소 준공 △현대건설 인수와 함께 자신의 4가지 숙원사업 중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게 됐다.
정 회장은 위기 때마다 과감한 투자로 정면 돌파하는 특유의 ‘뚝심경영’을 펼쳐왔다. 더불어 상식을 뛰어넘는 ‘통 큰’ 결단으로 현대차그룹의 성장을 견인했다. 1998년엔 그룹 수뇌부 등 안팎의 반대에도 법정관리 중인 기아차를 7조원에 인수했다. 기아차는 이듬해 흑자 전환했고, 현재 미국 시장점유율 9위에 올랐다.
정 회장이 2004년 추진한 미국 앨라배마 공장 건설사업도 처음엔 주변에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정 회장은 미국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현지 공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1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밀어부쳤다. 정 회장의 이 같은 생각은 적중했다. 앨라바마 공장은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2004년 2.5%에서 지난해 4.6%까지 끌어올리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견인했다.
정 회장은 또 철강산업의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6년부터 7년 동안 총 9조88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지속, 2013년 당진제철소 고로 3기 완공했다. 이로써 현대제철은 세계적인 일관 종합제철소로 거듭났다.
정 회장의 뚝심경영은 현대가 적통의 상징인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더욱 빛을 냈다. 정 회장은 2010년 5조원 규모의 인수전에 뛰어들 당시 재무적 부담이 크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자동차와 제철, 건설을 잇는 3대 성장축을 완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현대차그룹의 패밀리가 된 현대건설은 장기적인 업황 부진에도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467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2% 증가하는 등 성장궤도에 올랐다.
한전부지에 건설될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정 회장의 마지막 숙원이다. 정 회장은 8년 전부터 글로벌 5위 완성차 업체의 위상에 걸맞는 사옥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서울시 규제 등에 번번이 막혀 쉽지 않았다. 2006년부터 뚝섬에 110층짜리 신사옥 건립을 추진했지만 층수 규제로 무산됐었다.
정 회장이 한전부지 입찰에 10조원이 넘는 돈을 제시한 것은 그의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전부지 인수를 통한 정 회장의 100년 구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