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10년 전 “서민이 애용하는데”… 김기춘·김무성도 반대표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이던 지난 2005년 9월7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진 청와대 회담에서 참여정부의 담뱃값 500원 인상 단행에 이은 소주값 인상 방침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면서 노 전 대통령이 그랬듯 담뱃값 인상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야당 대표 시절엔 180도 다른 입장을 보였던 셈이다.
박 대통령은 앞서 2004년12월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선 담뱃값을 인상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당시 상정된 개정안은 244명의 의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64명, 반대 75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는데 기권한 5명 중 1명이 박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당시 투표 결과를 보면 여당으로서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던 열린우리당에선 찬성표가, 한나라당에선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박근혜정부에서 실세로 등극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은 반대표를 던졌다. 다만 현 정부의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진영 의원, 황우여 교육부 장관 등은 한나라당 소속이었지만 담뱃값 인상에 찬성하는 소신 투표를 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반대한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건강증진기금이 건강보험 추가 재정지원으로 엉뚱하게 사용된다는 점, 흡연층이 주로 저소득층이어서 담뱃값 인상이 소득역진 정책인데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 서민 가계 부담이 는다는 점, 그리고 그간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내리는 데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러한 반대 이유들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모하자 담뱃값 인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상 목표액도 1000~1500원으로 잡아, 참여정부 때보다도 인상 폭이 크다.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세수확보를 위한 우회 증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담뱃값을 1500원 올리면 담배수요가 줄어든다 해도 연평균 3조6000억원의 세수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에 이미 8조5000억원의 세수부족 사태가 벌어진 데 이어 올해도 전년과 비슷한 규모의 세수펑크가 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증세는 없다’고 호언장담해온 정부가 법인세 등의 직접 증세는 고려 않고 간접세 인상 카드만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인하대 강병구 경제학과 교수는 11일 “세수결손이 계속해서 크게 발생해 정부의 담뱃세 인상은 국민건강 증진보다는 세수증대 효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면서 “과세공평성을 강화하면서 부담 능력이 있는 고소득, 재벌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먼저 증세를 한 후 담뱃세 인상 등으로 세수 증대를 꾀해야 하는데 지금은 선결적 조치가 없어 조세저항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