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시장경제'-시장이 '계획'을 밀어내다

입력 2014-09-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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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제운용에서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인 '계획'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시장'이 대체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2009년 12월 화폐개혁 조치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시장을 단속하지 않고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KDI 북한경제리뷰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2010년 5월부터 2014년 6월까지 4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북한 정부는 시장에 대해 관용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면서 북한 당국은 오히려 시장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김정은 시대의 경제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북한의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시장활동을 전제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전문학술지인 '경제연구' 올해 2호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강조하면서 "모든 기업체들이 경영활동을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간다는 것은 매개 기업체들이 자체의 구체적 실정과 특성에 맞게 자기 단위의 경영활동을 창조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원칙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기업의 독자경영체제는 국가의 계획과 무관하게 스스로 원자재를 도입하고 판매선을 확보해 이윤을 챙기도록 하고 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4월 '3·26전선공장'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 공장은 독자경영체제를 바탕으로 임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노동자들의 월급이 실적에 따라 수십 배로 늘었고 일부 노동자는 월급이 100배 이상으로 뛰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임금 상승은 새로운 계층인 '중산층'을 만들어 내며 소비확대로 이어져 북한 경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공장이나 기업뿐 아니라 북한식 계획경제의 표상으로 여겨지던 협동농장의 운영시스템도 달라지고 있다.

20명 정도였던 분조의 규모를 3∼5명 정도로 줄였고, 분조가 일정량의 농작물을 국가에 내면 잉여분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공업과 농업 모두 시장을 통해 이윤을 실현토록 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원리가 북한 사회에서 본격 작동되고 있는 셈이다.

정권 수립 이후 소비에트식 계획경제 시스템을 추구하던 북한의 이러한 변화는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더는 중앙집권형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화폐개혁의 실패를 통해 이미 사회 전반에 퍼진 시장의 영향력을 체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년에 북한을 떠나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149명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은 북한에서 시장활동이 일상적임을 보여준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시장을 사실상 허용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라며 "본격적인 시장시스템의 완성을 위해서는 생산재 시장이 얼마나 활성화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획경제를 사실상 포기하고 시장을 활성화한 북한의 다음 과제는 금융개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할 때도 시장의 기능을 대폭 수용한 다음에 은행의 기능 활성화를 통한 금융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경제전문학술지인 '경제연구' 올해 3호는 은행의 기능을 "기업과 주민의 수중에 남아 있는 유휴 화폐자금을 동원해 기관, 기업소에서 모자라는 자금을 보장해주는 것"이라며 기업에 대한 대출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은행은 모든 기관, 기업소들이 화폐 거래를 주로 은행을 통해 진행하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상대적 독자성을 가진 기업소들의 경영활동을 통제한다"고 밝혀 은행을 통한 기업 통제를 주장했다.

북한 당국이 재정부족으로 기업의 활동을 계획이 아닌 시장에 맡겨놓은 상황에서 이를 통제하려면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임강택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제한된 재정 속에서 기업을 통제하기 위해 은행을 활용하려는 것 같다"며 "국가가 지향하는 선행산업 육성을 위해서도 금융의 기능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북한이 작년부터 평양시 은정첨단기술개발구를 비롯한 19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한 상황에서 원활한 외자 유치를 위해서도 국제적 기준에 맞는 금융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북한경제 전문가는 "재정에 의한 계획경제를 포기한 상황에서 개발자금을 마련하고 은행을 통한 기업들의 통제는 필요한 수순"이라며 "북한의 금융개혁은 시간문제일 뿐 해야만 하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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