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아하!] 최경환의 ‘공포’, 대통령이 풀어라

입력 2014-09-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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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논설실장

이젠 두렵다. ‘경제 활성화 법안을 제때 입법화해주지 않으면 한국경제 큰일 난다’는 정부의 말. 처음엔 그렇고 그런 겁주기로 여겼지만, 지금은 재깍재깍거리는 시한폭탄처럼 겁난다.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압박 수위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면서 더욱 그렇다.

어떻게 될까? 시한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3일 현재 상황으론 그렇다. 경제 활성화 법안은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전망도 전혀 밝지 않다. 2일 열린 새누리당과 세월호 유가족과의 3차 협상은 썰렁하게 결렬됐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야당은 샅바 싸움마저 끼지 못하는 신세다. 정기국회가 개원했지만 날 선 세월호 공방으로 상임위 문턱조차 넘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런 병목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1일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며 하루가 멀다고 국회와 야당을 향해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회의를 주재하며 릴레이 압박을 이어나갔다.

시장의 기대는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부동산시장에 온기가 돌고, 주식시장은 반색하고 있다. 2011년 이후 계속된 장기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는, 경제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그 열기를 시장의 동력으로 전환해줄 입법 통로는 오히려 더 좁아지고 있다. 피떡 때문에 뇌혈관이 터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형국이다. 희망이 실망과 분노로 바뀌면 시장은 곤두박질치며 싸늘해지기 십상이다. 장기 불황의 변곡점에 선 한국경제엔 참 나쁜 시나리오다. 무기력한 정치가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이란 깊은 수렁으로 어떻게 몰아넣었는지 충분히 봐 왔다.

그러면 의문이 든다. 정부의 복안은 뭔가? 판을 엄청나게 벌였는데 겁박밖에 없지는 않을 터.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글쎄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간절함이 넘쳐서인지 위험수위를 마구 넘나들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26일 대국민담화에서 “우리 경제의 맥박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7월 부임 당시 날린 ‘한국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될 수 있다’를 잇는 2탄이었다. 이틀 뒤인 28일에는 ‘한국은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짚었다. 최 부총리의 공포 시리즈인 셈이다. 뭉뚱그려 보면 법안 불발 시 디플레이션이 창궐하고 일본식 장기 불황이 본격화하면서 한국경제가 혼수상태에 빠진다는 주장이다.

정치인 최경환으로서는 할 만한 이야기다. 정기국회 시즌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강한 표현으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경제수장의 발언으로는 과하다. 수사일 뿐이라고 해명을 해도 국익을 스스로 훼손하는 자해로 오인될 수 있다.

여권 최고위직의 호소 행진에는 경제를 살리려는 절박함과 비장함이 절절하다. 박근혜 대통령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모두 그렇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해 달라는 강권 일색이라 아쉽다. 특히 법안 통과의 필수 존재인 야당에 대한 배려를 느끼기 어렵다. 국회선진화법이 엄연히 가동되고 있는 이상 야당의 협조를 구하지 못하면 결코 박수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인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데 재미를 붙였다는 우스개가 나돈다. 야당의 자멸 덕에 선거에서 연승했듯이 박영선호가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도 일이 절로 풀릴 것이라는 반사이익 기대감에 취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여당 밉상론이 커지면서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렸던 여론이 야당과 유가족 쪽으로 기울고 있다. 미디어리서치가 지난달 30일 실시한 설문조사(KBS 의뢰)에선 세월호 유가족 뜻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데 찬성 의견이 반대를 20%포인트 가까이 크게 앞섰다. 오차 범위 내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던 26일 조사(조선일보 의뢰)보다 나흘 만에 15.3%포인트나 급증한 것이다.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라 해도 정서상 흐름은 과히 틀리지 않는 듯하다.

국정이 세월호에 갇혀 140일째 마비 상태다. 경제라고 잘 돌아갈 턱이 없다. 추석을 이대로 넘기면 ‘혼절’이 과장만은 아닐 수도 있다. 최고지도자인 박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위기에 선장이 나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최 부총리가 공언한 그 끔찍한 공포가 현실화하는 일은 단연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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