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1일, 48개 케이블TV방송국(System Operator ‧ SO)이 엠넷 등 24개의 채널사용사업자(Program Provider ‧ PP)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9만7463 가구를 대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뉴미디어의 총아로 인식됐던 케이블TV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리고 2014년 8월 현재 케이블TV는 91개 SO, 그리고 270여개의 PP, 가입가구는 1483만 가구에 이른다. 케이블TV방송 20년 사이에 일어난 엄청난 외형적 변화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그렇다면 외형에 버금가는 질적인 변화도 있었을까. 뉴미디어 시대를 화려하게 열면서 시청자에게는‘꿈의 채널’, 제작자 및 방송사에게는‘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 케이블TV는 뉴미디어 다채널 시대를 여는 데 의미가 있었지 한동안 시청자의 외면속에 침체의 늪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블TV는 부실한 방송이라는 인식이 시청자의 뇌리에 박혔다.
오랫동안 빈약한 콘텐츠, 저조한 시청률, 악화되는 광고수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며 PP 사업자가 계속 바뀌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지상파와 차별화되고 독창적이며 전문적인 콘텐츠로 승부하겠다던 케이블TV는 열악한 제작환경과 인력으로 인해 같은 콘텐츠를 재탕, 삼탕하는 과도한 재활용, KBS 등 지상파TV와 외국TV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의 방영,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 등으로 일관해 시청자의 비판과 외면을 동시에 자초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케이블TV는 지상파TV의 아류도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2006년 CJ E&M의 tvN의 개국, 2011년 JTBC등 종합편성 채널의 개국, MPP의 등장 등으로 상황이 크게 개선되며 방송 트렌드를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0년 지상파TV 시청률 23.7%, 케이블 1.6%에서 2010년 지상파 20.2% 케이블12.9%으로 지상파는 급속도의 하향세를, 케이블TV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일일 시청시간 역시 2000년 지상파TV 6시간 10분, 케이블TV 24분에서 2010년 지상파 5시간21분, 케이블 3시간4분으로, 케이블 시청시간의 엄청난 증가세가 뚜렸하게 나타났다.
지상파TV 프로그램의 재방과 동일한 콘텐츠의 3탕, 4탕으로 일관하던 케이블TV가 tvN 등을 중심으로 KBS, MBC, SBS 등 지상파TV와 차별화된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대거 늘리고 독창적이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속속 제작하면서 젊은 시청자를 중심으로 케이블TV의 시청이 급속하게 증가한 것이다.
‘슈퍼스타K’ ‘꽃보다 할배’ ‘비정상회담’ ‘썰전’등 예능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응답하라1994, 1997’ ‘나인’ 등 드라마,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9’등 뉴스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케이블TV 프로그램들이 지상파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압도하며 방송가의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슈퍼스타K’는 MBC ‘위대한 탄생’등 지상파 오디션 프로그램 등장에 큰 영향을 줬고 ‘꽃보다 할배’가 KBS ‘마마도’ 등 장노년층이 전면에 나서는 프로그램의 진원지 역할을 하는 등 방송 트렌드를 선도하고 대중문화 판도를 이끌고 있다.
tvN 이명한 기획제작담당은 “아직까지 케이블TV는 지상파에 비해 제작 인프라나 인력에서 비교가 안될만큼 열세다. 케이블TV가 최근들어 시청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높은 관심을 이끄는 것은 제작진의 노력과 함께 지상파TV에 비해 실험성과 독창성 프로그램을 기동력있게 제작편성할 수 있는 환경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케이블TV의 강세는 인터넷과 모바일 등 변화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조화를 이루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한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나 예능 제작발표회 등을 인터넷 생중계로 내보내는 것에서부터 JTBC ‘뉴스9’처럼 포털과 연계해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볼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네티즌의 관심을 시청률로 이어가는 등 인터넷과 모바일에선 케이블TV가 지상파 TV를 압도하고 있다. 방송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단적으로 알수 있는 실시간 검색에서도 ‘렛미인’ ‘쇼미더머니’ ‘택시’ 등 케이블TV 프로그램 관련된 것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케이블TV는 이제 지상파TV 아류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당당한 방송의 주역, 대중문화 메카로 우뚝 서고 있다.